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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장이라는 용어는 잘못된 표현이다.
전남대학교 연구석좌교수 박상철
국제적 장수지역의 특성을 조사하기위해 동분서주하던 사반세기전 최고 장수국가인 일본에서 새로운 장수지역으로 떠오른 나가노현을 찾았다. 나가노로가는 고속도로를 달리던 중 우연히 이정표에 오바스테야마 (姨捨山,어머니를 버리는 산)이라는 표지를 보고 이상하게 생각하여 동행한 일본교수에게 물었다. 그는 머뭇머뭇하다가 잘 모르겠다는 말로 어물거렸다. 대답이 불편하였던 듯하다.그래서 나름대로 자료를 찾다가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실제로 일본에는 늙은 부모를 버리는 ‘오바스테(姨捨, おばすて)’라는 풍속이 있었다. 나가노 지역에서명칭 자체가 늙은 어머니를 버리는 산이라는 오바스테야마 (姨捨山)의실재를직접 보고 확인하며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더욱 일본의 저명한 영화감독인 이마무라 쇼헤이가 나라야마 부시코(楢山節考)라는 영화에서 칠십이 넘은 가족을 산에 버리는 처절한 풍습을 실감나게 영상화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만큼 일본에서는 이러한 풍습이 전통으로 유지되어 왔음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 이런 오바스테가 마치 우리나라의 고려장이라는 이름으로 둔갑하여 알려져 왔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늙은 부모를 산속에 버렸다는 풍속이 우리나라에 있었다는 증거는 없다. ‘고려장’이라는 단어가 처음 언급된 책은 우리나라를 한번도 찾은 적이 없는 미국 선교사 그리피스가 일본인이 한 이야기를 듣고 1882년에 쓴 책 ‘은둔의 나라 한국’에 처음 등장한다. 이어 고려장 이야기는 일본인 미와타바키가 1919년에 쓴 ‘전설의 조선’에 언급된 이래 마치 한국의 전통인양 오도되기 시작하였다.
더욱 근자에는 영향력이 큰 어느 대중가수가 “꽃구경”이라는 노래에서 언급하여 일반에 널리 퍼지고 있다. “어머니 꽃구경 가요. 제 등에 업혀서 꽃구경 가요 --- 한웅큼씩 한 웅큼씩 솔잎을 따서 가는 길 뒤에다 뿌리며 가네--- 내 아들아. 너 혼자 내려 갈 일 걱정이구나 --- 길잃고 헤맬까 걱정이구나.” 버려질 줄 알면서도 아들을 걱정하는 어머니의 마음을 표현했다고 하지만 우리 전통사회에 이런 풍습은 아예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짓된 고려장이라는 이야기가 우리사회에 널리 만연하고 있음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근자에 인구 초고령화가 초래되면서 노인 폄하현상이 벌어지고 사회 근간인 가족체계가 변질되면서 고려장이라는 용어가 더욱 자주 거론되고 있어 안타까움을 지울 수 없다. 특히 노인을 방치하거나 양로원에 위탁하는 비율이 높아지면서 버젓한 학술대회나 사회지도자들의 모임에서마저자조적으로 고려장이 마치 우리사회의 전통이었던 양 언급되고 있어 분명하게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고려장이라는 용어는 확실하게 버려야 할 때이다. 우리사회는 어느 나라보다도 노인공경을 전통적으로는 가족이 하여 왔으며 이제는 지역사회가 보완하고 있다.
최근 전남대 백세인연구단의 조사결과에 따르면 백세인의 건강상태는 과거에 비하여 크게 나빠지지 않았으며 삶의 만족도는 오히려 증진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변화의 근저에는 요양원과 같은 시설의 확충과 요양보호사제도의 정착이 있다. 독거 백세인의 70%가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아서 일상생활에서 기본적인 삶의질을 유지하며 살고 있다. 노인부양 책임이 전통사회에서는 가족중심이었지만 이제는 지역사회 중심으로 전환하고 있음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다. 다만 아쉬운 점은 노인을 대하는 가족들 태도의 변질이다. 늙은 부모를 요양원에 맡기거나 요양보호사에게 맡겼다는 점에 자위하고 찾아보지도 않고 잊어버리며 사는 가족이 의외로 점점 많아진다는 담당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씁쓸하기만 하였다.
가족의 방치로 삶의질이 처참한 백세인 사례를 드물게 본다. 남의 집 마당에 콘테이너를 놓고 혼자 살고 있는 98세 독거 할아버지를 만났다. 아흔여덟이라는 나이를 믿을 수 없을 만큼 건장하였으며, 스스로 식사를 챙기고, 장날이면 십리가 넘는 읍에 다닌다고 하였다. 콘테이너 안으로 들어가니 악취도 심하지만 여름인데도 히터를 켜서 실내온도가 찜통 같았다. 냉장고와 부엌에는 식기들이세척되지 않은 채 지저분한 상태로 쌓여 있었다. 백세인 조사 다니면서 별별 모습들을 보았지만 이토록 처참한 정황은 없었다. 일흔살이 넘은 딸이 있는데 어쩌다 한번 들를 뿐이라고 하였다. 혹시 주인집에서라도 살펴주는 일이 있을까 물었더니 주인 식구들도 할아버지가 건장하여 모든 일을 스스로 잘 처리한다는 핑계로 도움을 회피하고 있었다.
또다른 102세 할머니를 산속마을에서 만났다. 공직에서 은퇴한 손자가 맞아 주었다. 할머니에게 안내를 부탁하였더니 별장 뒷채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가보라고 하였다. 할머니는 지금도 스스로 청소하고 빨래하고, 식사도 하고 목욕도 한다고 부언하였다. 백살 넘은 할머니의 자립생활이 궁금하였다. 그런데 우리일행은 모두 충격을 받았다. 늙은 할머니가 기어서 나오는데 핏기조차 없는 얼굴로 냄새가 풍기는 남루한 옷을 입고 있었다. 나오면서 노인을 어떻게 모시느냐고 손자에게 물었다. 할머니 때문에 가족들이 많이 희생되었다며 지금은 보름에 한번 정도 반찬만 가져다주고 만다는 둥의 이야기를 거침없이 하였다. 할머니에게 물었다. “다른 가족들은 안 오나요?” “불러도 아무도 안 와” 그러면서 면담하고 있는 조사단의 젊은 팀원의 손을 꼭 붙잡았다.
이러한 사례들은 모두 가족의 방치가 백세인의 삶의질을 얼마나 낮추는가를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현재는 이만큼 처참한 상태의 백세인을 거의 만날 수 없다. 요양보호사라는 제도에 의해서 백세인들의 삶의질 개선이 보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가족과 지역사회의 상호보완적 노인부양이 보다더 효율적으로 이루어지길 기대해본다. 우리나라에는 고려장이라는 제도가 전에도 없었고 지금도 없음을 명확하게 인지하여야 한다. ◆존엄사및안락사에관한법안제안심포지엄에서 발췌 <저작권자 ⓒ 실버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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