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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7월 이달의 6‧25전쟁영웅, <육근수 육군 준장, 콘라도 디 얍 필리핀 육군 대위> 선정

김대영 기자 | 기사입력 2026/07/11 [08:01]

2026년 7월 이달의 6‧25전쟁영웅, <육근수 육군 준장, 콘라도 디 얍 필리핀 육군 대위> 선정

김대영 기자 | 입력 : 2026/07/11 [08:01]

20267월 이달의 625전쟁영웅<육근수 육군 준장, 콘라도 디 얍 필리핀 육군 대위> 선정

 

국가보훈부(장관 권오을)6·25전쟁 당시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위해 희생한 육근수 육군 준장콘라도 디 얍 필리핀 육군 대위 20267월 이달의 6·25전쟁영웅으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육근수 육군 준장> 전멸 위기의 아군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지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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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출신 육근수 준장1947년 조선경비사관학교(현 육군사관학교) 3기로 입학, 육군 소위로 임관했다. 8사단, 수도사단, 2군단 정보참모 등을 역임하면서 각종 전공을 세워 충무무공훈장, 화랑무공훈장 등 다수의 훈장 받았다. 195210, 육근수 대령(당시 계급)은 수도사단 기갑연대장에 임명되면서 금성지구 전투 현장에 배치됐다.

 

19537월 정전협정이 가까워지자, 중공군은 중부전선의 요충지인 '금성 돌출부'를 탈취하기 위해 마지막 대공세(중공군 7월 공세 또는 7·13공세) 시작했다. 당시 수도사단은 금성 돌출부의 좌측 부분을 방어하고 있었는데, 육근수 대령의 제1기갑연대는 사단 예비 부대로서 최전방에 배치돼 있던 제1연대와 제26연대를 지원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713, 중공군이 대규모 병력을 동원해 제1연대를 습격하자, 육 대령은 전멸 위기에 빠진 제1연대를 구하기 위해 714일 야간, 2대대를 직접 인솔해 제1연대의 방어진지로 이동했다. 그러나, 산 중턱에 매복해 있던 적의 기습공격에 제2대대는 혼란에 빠지게 됐다. 이에 육 대령은 부대의 대열을 직접 정비하면서 적군에 맞서 마지막까지 방어전을 펼쳤으나, 적군의 공격에 안타깝게도 현장에서 전사하고 말았다. 정부는 그의 공을 기려 1계급 특진 함께 을지무공훈장을 추서하였다.

 

<콘라도 디 얍 필리핀 육군 대위> 율동 전투에서 탁월한 지휘로 대한민국을 지킨 지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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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라도 디 얍(Conrado D. Yap) 대위는 필리핀 제10대대전투단 특수중대 중대장으로, 19514월 경기도 연천 북방의 율동전투에 참전하였다. 율동전투는 중공군의 제5차 공세에 맞서 1951422일부터 23일까지 연천 북방의 율동에서 중공군의 공격을 저지한 방어전투이다. 율동전투에서 10대대전투단은 수적인 열세에도 중공군의 공격을 이틀간 저지하여 다른 부대들이 철수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해 주었다.

 

당시 제10대대전투단은 퇴로 차단의 위기에서도 423일 새벽까지 전후방에서 공격하는 중공군을 맞아 방어전을 전개하던 중 미 제3사단의 철수 명령에 따라 철수를 개시했다. 그러나 이 무렵 통신두절로 철수 명령을 받지 못한 특수중대는 중공군에게 빼앗긴 진지를 회복하기 위해 역습을 준비했다. 이후 통신이 재연결된 후 대대장은 특수중대에 즉각 철수할 것을 지시하였지만, 특수중대장 얍 대위는 생존자를 구출하고 전우들의 시체를 수습한 후에 철수하겠다고 보고한 후 역습을 강행했다.

 

얍 대위의 지휘하에 특수중대는 고지 탈환에 성공한 뒤 부상을 입은 동료 2명을 구출하고 전사자들의 시체를 수습하며 철수를 시작했다. 그러나, 얍 대위는 이 과정에서 적의 공격에 심한 부상을 입고 중대원들의 들것에 실려 본대로 복귀했으나, 23심한 출혈로 숨을 거두었다.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2018년 태극무공훈장을 추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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