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평범한가 특별한가 비행기를 타고 내릴 때 꼭 보고 싶은 장면이 있다. 해변 가까이 비행장이 있으면 바다 깊이에 따라 해변 가까이 보이는 여러 선 들이다. 잠망경을 끼고 바다에 들어가서 보면 이렇게 구분되는 선들을 볼 수 없다. 모래 한 알 한 알이 사람 한 명 한 명이라면 각자는 다 특별한데 이렇게 선명하게 범주로 나뉘는 게 계속 의문이었다. 범주는 항상 있어 왔지만, 생명체 하나하나는 똑같은 게 없다 모든 생명체는 진화의 정도에 따라 종(種), 속(屬), 과(科), 목(目), 강(綱), 문(門), 계(界)로 범주화된다. 범주마다 보편성을 가진 평범함이 있다는 뜻이다. 우주선 안에서 미생물을 현미경을 보며 연구한 모리 마모루 우주인은 감탄했다. 미물인 박테리아 하나하나가 모두 다른 성격을 가지기 때문이었다. 박테리아의 보편성을 지니면서 동시에 각 생명체만의 독특한 성질을 가진다는 뜻이다. 인간이 가장 행복할 때는 자기만의 독특함을 알아주는 상대를 만났을 때가 아닐까 부부가 불행한 건 상대의 독특함을 보편성의 잣대로 재단해버려 서로 소외되었을 때라고 생각한다. 그중에서도 권력, 명예, 재력, 학력, 출신 등 인간이 만들어낸 문명이 기준이 될 때 부부의 사랑은 이런 조건들에 휘둘린다. 부모자식 간의 사랑도 마찬가지다. 자식들은 부모가 아무 조건 없이 자신을 사랑하는지 부모 욕망의 대체물로 사랑하는지 느낌으로 안다. 부부 사이에 천국을 만들지 못하면 세상에 천국은 없다 자신의 독특함이 가장 잘 드러나는 관계는 모든 것을 다 나눌 수 밖에 없는 부부관계다. 인간은 누구나 어릴 때 상처를 가질 수 밖에 없다. 이 상처가 아파서 방어하다 가장 덜 아프게 하는 방법을 반복적으로 사용하면서 성격이 되어버린다. 부부가 상대의 성격이 만들어진 어릴 때 상처를 보듬어 주고 받아주며 품어줄 때 비로소 자유로워진다. 자유는 외적인 조건이 맞아서가 아니라 내 모습 그대로 수용해주는 사람 앞에 있을 때다. 자신을 꾸며서 보여주며 가면 놀이를 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부부 사이에 이런 자유를 느끼지 못하면 밖으로 나돌게 된다. 외부에서 좋은 사람이 되기는 가정에서 좋은 사람이 되기보다 더 쉽다. 집 밖에서는 보편적인 룰을 따르면 인정받기 쉬워서다. 부부는 보편적인 룰 만으로 살 수 없다. 각자의 특수성이 어떤 식으로든 비집고 나와 보편적인 룰로 대응할 수 없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것을 알아차리고 그 원인을 이해해서 평가하고 비난하지 않으며 서로 보듬어주며 받아줄 때 천국이 만들어진다. 부부가 보편적 룰에 맞춘 평범한 삶이 아니라 서로의 특별함을 함께 살아낼 때 비로소 천국이 펼쳐진다. 인간의 역사는 개인의 특수함을 인정하는 쪽으로 변하고 있다 오랜 세월 인간은 왕과 신(神)의 뜻에 따른 보편적 기준에 맞추어 살아왔다. 인간의 이성을 발견하고 인간 스스로 선택하게 되자 인간해방이 이루어진다. 프로이트는 이성의 보편성을 넘은 개인만의 독특한 세계가 나오는 무의식을 발견한다. 개인의 해방이 시작된다. 민주주의가 1인 1표의 원칙을 지키는 것도 개인의 잠재적 역량이 무한하고 개인은 주체성을 가진 존재라는 전제 위에 서 있다. 각자의 선택이 모여서 구조를 바꿀 수 있다는 신념은 그래서 신성하고 숭고하다. 대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인간에 대한 이런 믿음을 가지고 민주주의를 제대로 구현할 후보를 뽑아야 한다. 이렇게 깨어있는 시민은 보편성에 휩쓸린 평범함이 아니라 후보의 특별함이 어떤 속성인지 알아볼 수 있는 감(感)을 가지고 있다. 보편성이 만들어지는 구조가 특별함을 알아보는 눈을 필요로 하는 이유다. ‘나’는 그래서 평범하면서 동시에 특별한 존재다. 이기적 개인주의는 이런 눈을 가질 때 넘어서게 된다. 정근원(칼럼니스트, 영상학 박사, 심층심리연구가) e-mail: youngmirae@naver.com <저작권자 ⓒ 실버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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