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Roma) 이탈리아에 가다
사진 : 콜로세움
르네상스의 요람 피렌체
베네치아에서 아침 7시26분발 기차를 타고 피렌체로 옮겨갔다. 르네상스의 요람인 피렌체(Firenze)는 아름다운 자연에 둘러싸인 우아한 산간도시로서 ‘꽃의 도시’라는 뜻이란다. 세계에서 가장 고전적인 예술의 향기가 그윽한 중세기의 분위기를 자아낸다. 거리 전체가 미술관이라고 할 수 있다.
산타마리아 노벨라 역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두오모 광장에 이른다. 이곳에는 아름답고 웅장한 꽃의 성모교회와 바로 앞에 팔각형건물인 산 조바니세례당이 있고, 옆에는 지오토가 14세기에 설계한 지오토의 종루가 자리잡고 있다.
피렌체 행정의 중심지 시뇨리아 광장, 베키오 궁전 앞에 그 유명한 미켈란젤로의 모작 다비드 상과 그 밖에 많은 조각들이 있다.
피렌체에는 다비드 상의 진품이 있는 아카데미아미술관, 우피치 미술관, 산 마르코 미술관, 팔라티나 미술관 등 5개 미술관이 있는 피티 궁전이 발걸음을 붙잡는다.
렌터카로 로마 入城
피렌체에서 Hertz를 찾아가 승용차를 렌트했는데, 피렌체 시내를 돌고, 로마로 달리기 위해서다.
로마로 가는 ‘태양의 길(Autostrada del sole)’은 밀라노에서 피렌체를 거쳐 로마를 경유하여 나폴리를 연결하는 이탈리아 자존심의 남북관통 고속도로로서 ‘관광루트’로도 불린다. 전구간 시속 100㎞ 이상으로 설계된 4차선도로이며, 따라서 제한속도가 없다. 피렌체에서 로마까지는 233㎞.
고속도로 휴게소는 레스토랑과 슈퍼마켓이 있는데, 매우 고급스럽고 깨끗해 보였다. 슈퍼마켓도 제법 크고 상품이 다양하게 진열되어 있다.
고속도로 인근의 고적을 소개하는 대형 홍보 Bill Board가 수없이 지나간다. 몇 번이나 고속도로를 벗어나 고적을 보고, 지방도로를 달려보며, 농가에서 민박하려는 욕심도 있었다.
고속도로는 무인 톨게이트이다. 진입할 때는 티켓을 뽑으니 차단기가 열려 들어갔으나, 로마에서 시내로 나올 때엔 난처했다. 지폐를 투입해도 들어가지도 않고 차단기는 굳게 가로질려 있다.
로마 시내는 택시전용차선이 오렌지색으로 그어져 있고, 전차가 느리게 움직여 교통이 매우 혼잡하다. 승용차는 작아 장난감 같다. 세계의 소형고물차는 다모아 놓은 것으로 생각된다. 신호대기 차들이 황색신호에 출발하므로 교차로를 지나갈 때마다 내 차 뒤꽁무니를 받치는 것같은 느낌이 든다.
가톨릭의 심장 바티칸
로마 북서부의 언덕 위에 면적이 0.4㎦, 인구 1천여 명의 세계 최소 바티칸(Vatican) 市國이 있다. 그러나 바티칸은 세계의 8억 가톨릭신자들의 총본산 이며, 소장되어 있는 미술품의 질과 양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성 베드로(San Pietro)성당은 르네상스의 대표적인 건축으로서 장엄하기가 이를 데 없다. 바로 앞에 펼쳐진 성 베드로광장은 양측에 반원형의 回廊과 도리아식 원주 284개가 늘어서 있으며 지붕에는 140명의 성자 상이 줄지어 있다. 밤에는 이 광장 곳곳에 가톨릭 순례자들이 촛불을 밝히며 기도를 드린다.
성당 정면 입구로 들어가면 오른쪽에 미켈란젤로의 대리석상 피에타가 있다. 그리고 죽은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는 깊은 감명을 준다. 안쪽 돔 아래가 교황의 제단이 있고, 그 제단 밑에 성 베드로의 지하 묘가 있다. 건물전체의 역동감을 그 아름답고 힘찬 곡선에 모았다가 허공에 해방시키는 듯한 훌륭한 大圓蓋는 지름이 41m, 높이가 108m에 달한다.
전설에 의하면 네로의 옥외극장 바로 밖에는 학살된 기독교신자의 시체를 묻는 묘지가 있었는데 AD 67년 베드로의 시체도 거기 던져졌었다. 그가 죽음으로써 많은 신자가 생겼고, AD313 콘스탄티누스 황제 자신도 개종하고 베드로의 무덤 위에 교회를 세웠다.
그러나 1450년경부터 이 교회건축물은 매우 노후하여 깨끗이 철거하고, 1506년 당시 법황 율리우스 2세는 그 자리에 2배가 넘는 새 성당을 계획하였다. 미켈란젤로를 비롯한 6명의 저명한 건축가가 연이어 필생 참여하였고, 헌당식은 1622년에 거행되었다. 그리고 정면 광장을 1667년에 완성된 것이다.
바티칸에는 미술관 도서관 등에서 볼만한 예술품들이 너무 많지만,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실낙원>, <최후의 심판>이 있는 시스티나 예배당은 빼놓을 수 없었다.
사진 : 성 베드로 성당과 광장
고대 로마인의 광장, 포로 로마노
로마는 BC 753년에 작은 도시국가로 시작되었다. 테베레강을 끼고 7개의 언덕에 고대 로마가 형성되었다. 현재도 이탈리아의 수도로서 20-80m의 구릉지대에 펼쳐져 있다.
베네치아 광장에서 콜로세움으로 향하는 카피톨리오 언덕과 팔라티노(Palatino) 언덕 중간 정도에 포로 로마노(Foro Romano)가 위치해 있었다. 포로 로마노는 고대 로마의 공화정치, 재판, 상거래 등 로마인의 중심이었던 광장이었다. 원형기둥이 쓸어져 있고 폐허되었다. 고양이 수십 마리가 우리를 반길 뿐이다.
콜로세움에 도달하기 전에 콘스탄티누스의 개선문이 서있다. 이 개선문은 콘스탄틴누스 황제가 맛센지오를 밀비오 다리에서 싸워 대승한 기념으로 세워졌다. 파리 개선문의 모델이 된 예술적 가치가 있는 건축물이다.
사진 : 개선문
콜로세움은 크다는 말인 콜로살레(Collossle)에서 유래되었다. 이 콜로세움은 1세기경 베스피시아누스 황제에 의해 준공된 타원형 경기장이다. 내부는 폐허되어 맹수를 가두어 두었던 지하우리가 다보일 정도다. 외부도 몹시 파손되었는데 외장에 사용되었던 대리석을 헐어서 르네상스․바로크 시대에 건설된 다른 건물을 장식하였다고 한다.
비토리아노 엠마뉴엘레 기념관의 옥상 양쪽에 로마군인이 말을 채찍질하면서 大戰車를 모는 동상을 보면서 베네치아 광장에 차를 멈추었다. 트레비 분수를 보기 위해서다.
트레비 분수는 대로에서 골목길로 조금 들어가서 있다. 트레비는 건물의 한쪽 벽면을 이용하여 분수가 만들어졌다. 아름다운 조각이 신비하여 지나칠 수 없는 관광코스이다.
오늘날의 세계인은 로마문화 속에서 살고 있다. 문자, 법률, 미술, 음악, 종교 등 영향을 받지 않은 것이 없다. 베네치아 광장에서 불과 4㎞안에 있는 고대 로마의 유적지. 렌터카로 부지런히 다녔지만 아쉬움만 남는다.
이국영 기자
<저작권자 ⓒ 실버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
|
많이 본 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