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학 칼럼] 호남해법을 위한 제언 2부, 風前細柳 해석의 오류
정재학 시인․칼럼니스트
훈요십조가 만든 영향력은 조선으로 이어진다. 태조 이성계는 정도전에게 조선8도의 특색을 평해보라고 한다. 이에 정도전은 전라도를 풍전세류(風前細柳 바랑 앞에 흔들리는 버들)이라 말하였다.
정도전은 이어서 경기도는 경중미인, 황해도는 춘파투석, 충청도는 청풍명월, 경상도는 송죽대절이라 평하였다.
문제는 이 평가가 매우 자의적이라는 점에 있다. 태조가 당신의 고향 함경도를 평하라 하자, 정도전 이전투구(泥田鬪狗)라 말한다. 진흙밭에서 싸우는 개란 뜻이다.
이에 태조 얼굴이 구겨지자 정도전은 얼른 고쳐 말한다. "석전경우(石田耕牛)일 수 있습니다." 돌밭을 가는 우직한 황소를 뜻함이다. 이에 태조의 얼굴이 풀어졌다고 한다.
문제는 풍전세류라는 평가 자체가 아니다. 풍전세류에 대한 해석이 매우 악의적이며, 이 또한 훈요십조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점이다.
풍전세류를 줄이면, 풍류가 된다. 버들 柳를 물흐를 流로 바꿔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풍류(風流)란 '멋스럽고 풍치가 있다'는 뜻이다.
실제로 호남인들 만큼 흥이 많은 지역도 없다. 판소리 창이 발생할 만큼 놀이판이 벌어지면 너나없이 어깨춤을 추고, 술자리에 앉으면 시조창 한가닥이라도 불러야 직성이 풀리는 곳이다.
예인(藝人)을 사랑하고 키우고 존경할 줄 아는 곳이다. 그리하여 소리만이 아니다. 서화는 그 위대함이 근현대를 아우른다. 그리하여 호남은 예술에 관한 한 그림이며 글씨며 춤이며 노래며 부족한 것이 없는 곳이다.
이렇게 풍류 넘치는 사람들이 남도예술을 견인하여, 현대의 문화창달에 이바지한 곳이 전라도요 호남이다.
그럼에도 풍전세류에 대한 악의적인 해석을 살펴보면 기가막힌다. 바람 앞에 흔들리는 버들처럼 줏대없고 간사하다는 것이다. 경박하다는 평가도 있다. 간사와 경박을 합쳐 사박(詐薄)하다고 한다. 해석이 거의 쌍욕에 이른다.
그러니까 호남선비가 도포자락 너울너울 춤을 추는 것이, 허세와 형식에 찌든 구태스런 타지역 선비 눈에는 경박하게 보였을 수도 있다. 그러나 호남인들이 줏대없고 간사하다는 평가는 어디에서 기인하는가.
고려를 이은 조선초기 당시 개혁을 주도한 인물 정도전이 호남과 호남인에 대한 악감정으로 이런 평가를 내렸을 까닭이 없다. 다시 말하지만 문제는 해석한 이의 의도와 그 정체에 있다.
태조 이성계가 고려민중의 주목을 받는 사건이 있었다. 바로 황산대첩이다. 아기발도를 대장으로 쳐들어온 왜구들로 인해 백성의 시체는 산을 이루고 피는 시내를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이때 이성계는 왜구들을 전라남도 남원군 황산에서 토벌하여 대첩을 이룬다. 이 대첩으로 백성을 구한 이성계는 민중의 지지로 조선을 창업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황산대첩 당시를 생각해 보라. 1378년에 일어난 황산대첩 당시 호남백성들이 손을 놓고 있었겠는가. 누구는 식량을 대고 날랐을 것이며, 누구는 창칼을 들고 함께 싸웠을 것이며, 누구는 정탐병이 되어 왜구의 움직임을 보고 했을 것이 아닌가.
이성계는 황산대첩 후 14년만인 1392년 조선을 개국한다. 그러므로 호남백성들을 간사하고 경박한 사람들로 조롱할 까닭이 없다. 줏대없는 사람들이 어찌 황산에서 왜구와 맞섰겠는가.
호남은 역사의 격동기마다 격동의 물결을 온몸으로 맞이하고 극복하여 민족의 영광을 수호한 곳이다. 간사하여 뒤통수치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호남은 산천 어디든 발을 디디면 노래를 부르고, 달빛 소소한 정자 위에서 학춤을 추는 선비들이 사는 곳이다. 국난에 이르면 안일과 무사를 버리고 총칼을 들었던 호남인들이 누구의 뒤통수를 쳤겠는가.
풍류를 경박하다고 조롱한 이들, 줏대없고 간사하다고 해석한 이들이 훈요십조를 조작한 자들의 후손은 아니었겠는가.
조롱과 멸시가 깊어지면, 한이 일어나는 법이다. 신라계 권력욕으로부터 발생된 호남배척을 정당하다고 볼 국민은 없다. 그러나 호남에 대해 조롱과 멸시는 조선조 500년을 이어갔다. 심지어 반역향(反逆鄕)이라는 것이었다.
2024. 1.22
전라도에서 시인 정재학
3부, 호남은 反逆鄕이 아니다 <저작권자 ⓒ 실버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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