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부, 큰 해법 둘 작은 해법 세 개
필자(筆者)는 독(毒)이 있는 곳에 약(藥)도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난제는 있을 수 있으나, 답이 없는 문제는 없다고 믿는다.
호남에 관한 해법도 마찬가지다. 난제일 수는 있으나, 그 문제가 풀리지 않고 영원히 진행될 수는 없다. 문제는 호남 해법을 위해 전 국민들이 얼마만큼 진심을 갖느냐에 달려있다.
그리고 해법을 위한 용기를 가져야 한다. 훈요십조는 잘못된 조작이며, 풍전세류 역시 잘못된 해석이라고 용기있게 말하여야 한다. 용기없는 해결책은 없다.
당장 총선에 필요한 의석수나 챙기자는 식의 사탕발림은 또 속이느냐는 뜻으로 받아들이기 쉽다. 대선 때 쫄면서 찾아오는 식이라면, 두번 다시 호남땅에 발걸음을 내딛어서는 안된다. 용기는 당당함이다.
역사는 정면이다. 진심을 다하여 용기를 갖고 잘못된 지난날에 대해 흉금을 터놓고 이야기하여 보라. 해법은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이고, 마음에서 결실이 맺어지는 것이다.
한때 필자(筆者)는 혹시 삼국정립시대가 도래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고 깊은 사색에 잠긴 적이 있다. 흩어진 것들은 때가 되면 뭉쳐지고, 뭉쳐지면 흩어지는 것이 자연의 섭리라면, 지금 한반도는 다시 삼국시대로 돌아가는 중인지도 모른다.
북한이 고구려, 전남북이 백제, 한강유역을 차지한 신라. 그리하여. 지금 호남의 좌파화는 과거 고구려백제의 동맹 같은 것은 아닐까를 염려하고 있었다.
게다가 사회일각에서는 '전라도 독립론'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특히 호남 천대와 멸시에 앞장섰거나 익숙한 사람들이 전라도를 차라리 독립시키자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 내면에는 독립하면 즈그들이 얼마나 잘 살겠느냐는 조롱이 깔린 생각이겠지만, 이건 계산이 너무 단순한 상황판단이다.
1. 전라도 독립
만약 전라도가 독립하게 되면, 그 즉시 일본 자본이 들어오게 된다. 북한도 어떤 방식으로든 협력하게 될 것이다. 중국 또한 이 좋은 기회를 놓칠 까닭이 없다. 제주도도 독립에 가담할 가능성이 크다. 경제도 군사력도 순식간에 확장될 가능성이 크다. 호남인들을 얕잡아 봐서는 안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필자(筆者)는 개인적으로 호남인의 강함에 혀를 내두른 적이 있다. 손주를 봐주기 위해 일요일 오후에 서울로 갔다가 금요일 오후에 오는 그 수고를 10년째 마다 않는 진라도 할머니들을 주변에서 흔히 보고 있다. 내 손주는 내 손으로 키운다는 일념 하나로 10년째 살아가는, 이 강인함 속에서 전라도 아이들이 자라고 있는 것이다. 할머니는 강원도로 할아버지는 대전으로 가서 손주를 키우는 일을 간단하게 생각해서는 안된다. 가족 전체가 손주 키우는 일에 협력하고 있으니, 그러니 어찌 전라도 아이들의 경쟁력이 타지역에 비해 떨어질 것인가.
그러나 전라도 독립은 허용할 수 없는 민족분열의 마지막 결말이다. 그렇다고 준동하는 공산빨갱이들을 가만 보고 있을 수도 없다. 이들을 박멸하고 청명한 대한민국을 보고 싶다면, 이젠 혁명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
2. 셀프혁명과 계엄시대
만약 북한이 전면전 혹은 국지전일지라도 전쟁을 일으키거나, 남한좌익들이 탄핵폭동을 일으킨다면, 그 즉시 대한민국은 계엄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대청소를 시작하는 것이다.
대통령이 계엄사령관에게 전권을 맡기고 스스로 물러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길어봐야 2년이면, 민주당부터 민노총, 언론방송, 민변, 전교조 등 사회곳곳에 둥지를 틀고 있는 종북좌익들을 도려낼 수 있다. 말이 통하지 않고, 반역이라는 목적 한 가지를 위해서는 온갖 거짓과 선동과 저질도 마다않는 자들이니, 오직 극약처방만이 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도 쉽게 찾아올 기회가 아니라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천년의 한을 씻는 작업부터 먼저 시작해야 한다. 독립이든 계엄이든 한의 근인(根因)을 제거하지 않으면, 그 어떤 미사여구를 붙일지라도 원한은 안으로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허생전에서, 허생은 이완장군에게 나라를 위기에서 구할 비책을 말해준다. 그러나 이완은 어느 것 하나도 할 수 없다는 말을 한다. 화를 내고 떠나버리는 허생. 아무것도 할 수없는 자들이 방법을 알아서 뭐하겠는가. 지금 필자의 심정이 허생과 같다.
작은 해법1 (훈요십조 조작과 풍전세류 해석에 대한 공개 토론회)
1999년 무렵, 현 유인촌 문화체육부 장관이 KBS에서 진행한 '훈요십조는 조작되었는가'가 방영된 적이 있다. 바로 이런 프로그램을 확대하여 방영하고, 전국을 대상으로 공개토론회나 공청회를 갖도록 해 보자.
많은 국민들이 공감을 한다면, 전 국민적 반응이 일어날 것이고 어쩌면 해결의 실마리를 잡을 수가 있다. 주저하면 안된다. 해결의 가능성이 1%만 보인다 하더라도 99%를 항해 나아가야 한다.
그렇다고 해도, 불법에 관한 관대한 호남 처우는 있어서는 안된다. 호남이 저지르는 불법적인 활동이나 불법을 선동하는 단체에는 관용을 베풀어서는 안된다. 통합이 필요하다고 해서 치외법권을 허용할 수 없다.
그 대상이 바로 실존하는 전교조 문제다. 전교조로 인해 공산주의가 우리 아이들에게 달라붙었기 때문이다.
작은 해법2 (전교조 해체)
문제는 우리 아이들과 전라도에 달라붙은 공산주의를 어떻게 떼어내느냐는 것이다. 북한식 공산이념과 주사파 공산주의자들을 떼어내지 못하면, 우리는 북한이 망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북한이 망한다는 것은, 지금으로선 기대할 수 없는 일이다. 북한은 모두 죽고 핵심당원 500만명만 있어도 재건할 수 있다고 장담한 사람이 바로 김정일이었다. 조직과 체계, 김씨일가에 대한 충성심 어느 하나도 흩어진 적이 없다.
다만 1인독재체제로 인한 경제몰락이 심화되고,국제제재로 살기가 힘들어졌을 뿐이다. 그러나 살기 힘들어졌다고, 북한이 망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더 독해졌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북한 멸망이라는 요행만을 바랄 수는 없다.
더구나 공산주의자 문재인이 북한에 모든 것을, 국정원 비밀사항까지도 오픈 시킨 지난 5년이었다. 그러므로 공산당 세포들이 어디까지 퍼져있는지 알 수 없다. 웬만한 정치인들 주변에는 거의 배치되었다고 판단된다.
그러므로 북한 찬양 및 반역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전교조세력들을 가장 합법적으로 다스려야 한다. 이적단체 소송도 그중 하나다. 바로 종북찬양교육이 이적반역행위가 아니겠는가.
호남 해법은 전교조 파훼와 깊은 관련이 있다. 종북좌파를 양성시키는 전교조부터 해결해야, 우리 사회에 종북좌파를 근절시킬 수 있다. 그러므로 전교조는 대한민국뿐만 아니라 전라도 전부를 반역의 구렁텅이에 빠뜨리는 사악한 존재이다. 전교조 이적단체 소송이라는, 오직 강력한 합법만이 대한민국 수호 가능성을 제시해 줄 것이다.
작은 해법3 (5.18 국민투표)
국민들이 호남을 향해 침을 뱉는 요인 중의 하나가 5.18 가짜유공자들이다. 공적조서도 없는, 국가도 모르는 자들이 어떻게 유공자로 변하고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대한민국 주사파가 대부분 유공자로 되어있고, 일반인 중에도 몇 사람이 인우보증서에 보증을 서면 너나없이 유공자가 되는 이 참담한 상황을 반드시 개선시켜야 한다. 이 또한 종북세력들을 전라도와 분리시키는 작업이다.
그리고 자손 대대로 유공자 혜택을 받는 문제부터, 국가보훈부로 유공자 심사를 옮기는 문제까지 국민투표에 붙여야 한다. 이 투표로 결정되면, 당당하게 개선할 것은 개선해야 한다.
반드시 격렬한 저항이 예상되기에 용기는 필수다. 호남인들도 이 과대한 혜택에 대한 개선을 반대할 명분이 없다 이미 논리를 상실한 사람들이기에 폭력으로 나올 가능성이 크다. 우리는 그 불법에 후퇴해서는 안된다. 그래서 국민 전체의 뜻을 등에 업어야 한다는 것이다.
전교조는 호남이 발상지다. 5.18도 광주가 중심이다. 모두 불법과 종북세력들이 주도하고 있다. 그 불법이 대한민국을 수치와 저질의 길에 들어서게 하고 있다. 그러므로 전교조와. 5.18 가짜유공자에 대한 조치는 필수적일 수밖에 없다.
《결론》
민족은 운명의 공동체다. 국운에 따라 웃고 국운에 따라 함께 울면서 5000년을 이어온 공동체다. 희노애락이 서로 다를 수 없기에 우리의 눈물은 같은 색깔을 지닌다.
신라계 출신으로 훈요십조를 주도한 최제안은 문하시중을 지낸다. 무려 삼대가 문하시중, 지금의 국무총리를 지냈다. 고려시대 최고의 명문가로 발돋음한 것이다.
그러나 도선국사를 비롯한 최지몽, 김길 같은 마한계는 사사로운 이익을 버리고 고려의 안정을 위해 통합을 추진하였다. 그래서 경순왕에게도 견훤에게도 상부(上父)라 칭하며 혼인을 통해 서로를 잇고 분열을 막았다. 따라서 백제 신라 어느 쪽에서도 부흥운동이 일어나지 않았다.
이것이 진정한 통합의 정신이요, 고려창업의 대인배적인 결말이다. 그러나 신라계는 훈요십조를 조작하여 분열과 배척을 조장하였다. 그리고 1000년을 이어 호남인을 배척하고 멸시하였다.
가증스러운 일이다. 더구나 조선조까지 이어지며, 그래도 깨어있다는 실학자마저도 조롱과 멸시에 합류했다는 사실은 기가막히는 일이다.
전라도사람을 경험한 사랑들 중 실제로 뒤통수치고 배신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전라도사람이라고 단 한번이라도 조롱과 멸시를 당해본 사람들은 등을 돌릴 수밖에 없다. 이미 인생관이 돌아섰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라도 사람들은 스스로 뭉친다. 같은 전라도사람끼리는 마음 편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마주 바라봄에 있어 누구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으니, 말이 편하고 서로 오가는 정서도 편하다. 단결이 강한 이유다.
아무리 그래도 전라도사람들은 빨갱이들까지 용납한 일은 없다. 일부 주사파나 남로당 계열의 사람들이 북을 따르고 인민공화국을 위한 충성맹세문을 올리고 있다 하나, 그것은 소수일 뿐이다. 지금 전라도에서 공산주의자들을 몰아내고, 자유민주를 회복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호남개혁본부를 차리고 노력하고 있다. 의로운 사람들이다.
이런 비극 속에서 우리는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다. 어쩌연 현대를 벗어나 곧 초현대 문명시대를 맞이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호남에 관한 국민들의 의식은 고려시대 훈요십조에서 머무르고 있다. 비극은 생각이 진화하지 못한 우매(愚昧)에 있을 것이다.
2024.1. 29 전라도에서 시인 정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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