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는 두 종류 날개로 날지 않는다
정재학 (시인.칼럼니스트)
1960년대 좌익진보를 표방하던 대표적인 인물, 리영희 씨는 ‘새는 두 날개로 난다’고 하였다. 실물의 현상에서 새는 반드시 두 날개로 날아갈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수(數)의 인식에 대한 리영희 씨의 심각한 오류가 있었다.
둘(二)이란 수에는 수량과 종류라는 두 가지 함축적 의미가 내포 되어 있다. 둘은 두 가지라는 ‘종류가 다른 둘’이라는 뜻과 ‘두 개’라는 수량을 나타내는 의미가 있다.
리영희는 두 개의 날개, 즉 ‘수량을 의미하는 두 날개’를 말하였다. 그렇다면 새는 ‘두 날개로 난다’가 아니라 ‘두 개의 날개로 난다’고 말해야 옳다.
새의 두 날개는 다음과 같이 유추할 수 있다. 자유경쟁이 우익(右翼)의 날개라면 절대평등은 좌익(左翼)의 날개일 것이며, 또한 자유민주가 우익이라면 민중민주는 좌익일 것이다. 경제 성장(成長)이 우익의 목표라면, 수익의 분배(分配)는 좌익의 목적일 것이다.
리영희 씨가 주장하는 말을 선의(善意)로 해석한다면, 리영희 씨는 자유민주와 민중민주가 균형을 이루고, 성장과 분배가 골고루 조화된 새의 개념으로 ‘새는 두 날개로 난다’고 하였으리라 짐작한다. 그러나 그는 중대한 착오를 일으키고 있었다.
둘이란 의미 속에는 ‘두 가지’라는, 서로 다른 종류를 뜻하는 ‘두 가지’라는 개념도 있다는 것을 그는 신중히 생각하지 않았다. 서로 성격이 다른 두 가지 날개를 지닌 새. 예를 들면 까마귀의 날개와 비둘기의 날개를 지닌 새, 혹은 새매의 날개와 청학의 날개를 지닌 새라면? 이런 기형(奇形)의 새라면 어떤 모습이며, 그 새는 날 수 있을까?
상식적으로, 새는 두 가지 서로 다른 날개로는 날지 못한다. 그것은 날 수 없는 불가능의 새이다. 그러한 의미에서 대한민국의 좌익과 우익은 서로 다른 종류의 날개를 지닌 비정상적인 기형(奇形)의 새라고 단언할 수 있다. 이것이 리영희 씨가 일으킨 착각이다.
지금까지 나타난 대한민국의 좌익은 같은 색깔과 기능을 지닌 날개로서 자유민주를 보완하는 날개가 아니라, 북한 김정일을 추종하는 날개이며, 사유재산(私有財産)의 날개가 아니라 공산(共産)의 날개였다. 또한 평화(平和)통일의 날개가 아니라 적화(赤化)통일의 날개, 선의(善意)의 날개가 아니라 악의(惡意)의 날개, 투쟁과 피의 날개였다.
현대에 이르러, 지구 어디에도 인민이 개인의 노예가 된 나라는 없다. 더구나 세습되는 나라도 없다. 그러나 북의 김씨왕조엔 무려 60년을 2500만 동포가 노예가 되어 있다.
이러한 비정상적이며 봉건적인, 기형적(奇形的)인 날개를 지닌 북한 김씨왕조의 주체사상과 그 비호(庇護) 아래 붉은 투쟁으로 일관하고 있는 범민련 등 대한민국에 준동하는 좌익들의 날개는 무엇일까. 이 혼란 속에서 대한민국이란 새는, 모양과 의도가 전혀 다른 두 가지 날개로 이루어졌음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
한쪽 날개는 하늘을 젓고 있고, 다른 한쪽 날개는 땅을 향해 착지(着地)하고자 하는, 방향과 목적이 전혀 다른 곳으로 날개를 젓고 있는 기형적인 새가 바로 우리 대한민국이라는 새이다. 그리하여 천국을 향해 비상(飛上)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또 우리의 현실이다.
과거 민노당은 미군철수를 정당 강령(綱領)으로 삼고 있었다. 김씨왕조라는 자유의 적과 동조(同調)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온갖 분란과 혼돈과 증오가 난무하여 대한민국은 서로가 서로를 이분화(二分化)하고, 적과 아군으로 나뉘어져 노동자와 기업가는 빼앗고 빼앗기고 있다. 조화로움과 양보와 이해와 합의(合意)가 이루어지지 않은 나라. 그러므로 우리의 새는 두 가지 날개를 지니고 있고 그리고 날지 못하고 있다.
작금(昨今)의 대한민국. 좌익과 우익으로 나뉘어 사상(思想) 전쟁(戰爭)에 휩쓸려 온통 거리는 민노총 붉은 깃발이 나부끼고, 북의 눈치를 보며 군사훈련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나라. 노동자와 기업가의 분노와 고함과 노성(怒聲)이 난무(亂舞)하는 시대에 처해 있는 조국 대한민국.
리영희의 주장으로 본다면, 지금은 두 가지 종류의 날개 중 적화 통일을 주도하는 왼쪽날개가 정권을 잡고, 자유민주 시대에서 민중민주 시대로 방향을 틀어 마침내 연방제 적화통일로 나아가고 있는 시대인지 모른다. 그리고 그 끝에는 김씨왕조라는 불랙홀이 기다리고 있는지 모른다. 자유와 민주를 상실하고, 7000만 민족이 노예가 되기 위해 김씨왕조라는 불랙홀 속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는지 우리는 정녕 모르고 있다.
“새는 두 가지 날개로는 날지 않는다.”
리영희, 이 성숙하지 못한 사상론자가 말한 ‘새는 두 날개로 난다’는 말은, 결국 ‘날개는 두 가지 종류’일 것이라는 가능성을 간과한 생각이었다. 그리고, 1970년대 대한민국에 남민전을 비롯한 김일성 주사파를 양성하고 만 얼치기 사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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