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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학 칼럼] 김용만 의원과 백범 김 구의 1948년

이 준 기자 | 기사입력 2024/08/31 [15:23]

[정재학 칼럼] 김용만 의원과 백범 김 구의 1948년

이 준 기자 | 입력 : 2024/08/31 [15:23]

김용만 의원과 백범 김 구의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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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재학 시인․칼럼니스트

 

백범 김 구선생의 증손자 민주당 김용만의원이 '한법부정 및 역사왜곡행위자 공직임용금지법' 쉽게 말하면, '신친일파 공직임용금지법'을 발의했다는 소식을 듣고 만감이 교차하는 심정이다.

백범 김 구선생의 독립운동 전과정은 항일독립운동의 정점(頂點)이자, 백절불굴의 민족혼을 상징하는 위대한 깃발이었다. 그것은 민족이 걸어야 하는 올곧은 바른길이었다. 이 위대한 업적은 그 누구도 폄하할 수 없고, 시대가 흐르더라도 피맺힌 백범의 족적은 어떤 이유에서든 더럽혀질 수 없다. 민족이 존재하는 한, 백범의 독립운동은 자주의 정신으로 이어지는 뜨거운 얼일 것이므로, 부탁하건대 대한의 민족이라면 그 누구든 백범을 향해 경의를 표해다오.

자서전 백범일지는 (白凡逸志)는 김 구의 모든 삶과 철학과 일생의 소신이 담겨진 책이다. 1929년과 1943년 각각 집필된 두 권의 친필본은 1997612일 대한민국의 보물 제1245호로 지정되었다.

누군가는 1947년 명문장가인 춘원 이광수의 꽃단장을 통해 재탄생했다 하여 폄훼하고 있으나, 백범일지가 전하는 숭고한 뜻과 정신은 오늘과 내일이 다를 수 없다.

다만 민족분열을 막기 위해 평양을 방문하면서부터 백범의 말년은 꼬이기 시작한다. 독립운동 전 과정 동안 그토록 경원시해 오던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속고마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백범께선 인생의 마지막 고개를 훨훨 넘어가지 못하였다.

김 구는 1948.4.18.부터 4.30일까지 약 12일간 북한을 방문한다. 제주4·3 공산폭동이 남로당 지령에 의해 진행되고 있을 때였다. 이에 김일성(김성주)은 북한을 방문한 김 구에게 인민군대 군사퍼레이드를 보여준다. 인민군대는 백범이 평양을 방문하기 전, 194824일에 이미 창설되었다. 소련군은 보유하고 있던 엄청난 양의 무기를 넘겨주고 있었다.

수많은 탱크와 아포와 전투기까지 잘 훈련된 북한군을 보면서 김구는 경악한다. 김성주의 북한은 인민공화국 건국(1948.9.9) 전에 이미 강력한 군대를 보유하고 있었다. 반면 미군은 전쟁을 방지하고자 국군무장을 거부하고 무기를 주지 않았다. 이 막강한 인민군대를 보고 김 구는 전쟁을 예견하게 되는 것이다.

2008년 무렵, 이에 대한 문건이 비밀이 해제되어 대만에서 나왔다. 이 비밀문서에서 김 구는 같은 해 1948711일 자신을 찾아온 주한 중국(현 대만) 공사 유어만과 대화를 나눈다.

백범은 유어만 공사에게 남북한 지도자 회의에 참석한 동기를, '북한에서 실제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고 말한다. 그리고 그 결과를 다음과 같이 밝힌다.

"공산주의자들이 앞으로 붉은 군대의 확장을 3년간 중지한다고 하더라도, 그 사이 남한에서 무슨 노력을 다하더라도 붉은 군대의 수준에 대응할 만한 강력한 군대를 육성하기란 불가능하다.

소련은 비난받을 새도 없이 손쉽게 붉은 군대를 동원해 남침할 것이다."

그때 김 구선생은 북한이 남침해올 것을 분명하게 깨달았음을 유어만 공사에게 말하였다. 그리고 모든 상황을 종합하여, 남한은 북한을 절대 이길 수 없음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리고 부통령에 취임해 건국에 참여해 달라는 유어만의 간곡한 요청을 거절한다. 김 구는 어차피 적화될 나라의 부통령' 운운하며 일언지하에 거절했다고 한다.

비록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더라도, 소련군의 지원하에 인민군이 침략할 것이고, 대한민국은 망하게 된다는 것이며, 따라서 망할 나라에 부통령이 무슨 소용이겠느냐며 대한민국 초대 부통령직을 거부하는 것이다.

김 구는 194966일 안두희에 의해 암살된다. 6.25 1년 전의 일이었다. 그 안두희는 암살 전 백범과 언쟁을 벌인다. 그 자리에서 백범은 격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안두희가 남긴 글이라 실증할 수 잆어 자세한 내용은 밝힐 수 없으나, 백범은 서책과 벼루를 던질 만큼 분노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만약 김구 선생이 북한의 의도를 알고 남침의 위험을 알렸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백범이 직접 이 사정을 알리고 전쟁을 막기 위해 노력했더라면, 어쩌면 우리는 참담한 동족상잔으로부터 벗어날 수도 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백범은 이 모든 것을 알았으면서도 입을 닫고 만다. 위대한 독립투사가 마지막 인생의 고비를 넘지 못하고 만 것이다.

바로 이 점을 뉴라이트계열의 반역자들이 혹독하게 비난하고 있다. 왜구의 조종을 받는 하찮은 것들이 감히 누구를 비난하느냐고 할 터이지만, 세상은 선동에 속기 쉽다. 백범은 친일파들에게 손가락질 받을 그런 하찮은 인물일 수 없으나, 지금은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한때 대한민국은 10만 원권 지폐에 김 구 초상화를 넣은 적이 있다. 그러나 대만에서 백범 김 구의 이러한 비화(秘話)가 비밀이 해지되어 알려지자, 신사임당이 있는 5만 원권만 발행되고, 김 구가 새겨진 10만 원권 발행은 중단되었다. 그만큼 우리 사회는 충격을 받았던 것이다.

필자는 김 구 선생의 증손자 김용만 의원이 좌빨 더불어민주당에 몸을 둔 사실이 너무도 마땅치 않다. 민주당은 백 범 김구선생의 명예를 추락시킨 김일성과 그 일족을 추종하는 자들이 모인 주사파정당이다. 이 반역정당에서 신친일파 공직임용금지법을 외친다는 것은 증조부 백범 김 구선생의 얼굴에 먹칠하는 짓이다. 김용만이 정상이라면, '빨갱이 공직임용금지법'부터 먼저 발의했어야 했다.

다시 말하건대, 더불어민주당은 백범 김 구선생이 상해임시정부 옥쇄를 김일성에게 갖다바쳤다고 믿는 자들이다. 따라서 김용만 의원이 빨갱이들과 더불어 윤대통령 탄핵에 앞장서고, 이재명 보호에 나서는 한편, 반역입법 폭주에 동조 하는 이 모든 것이 모쪼록 꿈이기를 바란다. 필자는 백범 김구선생의 후손을 두고, 이처럼 한숨을 쉬는 일이 있으리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않았다. 참으로 개탄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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