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톨레도(Toledo) 성에 가다
사진 : 톨레도 알카사르(Alcazar)
메세타 위 수도
바르셀로나에서 스페인 국철 RENFE를 이용하여 아침 6시 26분 마드리드 차르마틴역(Charmatin)에 도착했다. 수도의 중앙역답게 모던하고 깨끗하다.
마드리드는 고도 650m이니 서울 남산 높이만 하다. 스페인 대부분이 메세타라 불리는 대지(臺地)로써 이루어져 있고 강수량이 적은 데다 여름과 겨울의 온도 차가 심하여 사막과 같은 경관이 나타난다. 이 건조한 기후 조건 때문에 일반적으로 식물에는 부적합하며, 민둥산과 토양은 다갈색을 띤다.
마드리드는 10세기경 톨레도를 방어하기 위해 무어인(Moors, 이베리아반도를 정복했던 아랍계 이슬람교도의 명칭)이 세운 성채에서 비롯되며, 이 성은 마드리드가 수도로 된 후에는 왕궁이 되었고 동시에 도시의 중심이 되었다.
마요르 광장에서 시작하여 시내투어에 들어갔다. 베르나르도 거리가 시발점인 버스는 14곳에 정차장이 있고, 칼라오 광장, 돈키호테와 종사 산초 판사의 동상이 서 있는 스페인 광장, 산프란시스코 광장, 마드리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마요르 광장, 프에르타 델 솔, 우리에게 잘 알려진 고야의 <옷 입은 마야>, <누드 마야>가 있는 프리드 미술관을 돌면서 주위에 볼만한 곳을 설명한다. 시내로 별로 크지 않지만 걷기에 수월치 않다.
왕궁, 스페인의 얼굴
버스는 왕궁 앞에서 정차한다. 마드리드의 상징인 왕궁(Palacio Real de Madrid)과 아름디나 성당(Ntra. Sra. de la Almdena)이 마주 보고 있다. 가톨릭 국가답게 스페인 왕의 신앙을 지키려는 듯.
이 왕궁은 1738~1764년에 건설되었으며, 이탈리아와 프랑스 영향을 입은 신고전주의 건축물이다. 방이 1,800여 개나 되고, 내부는 고야의 그림, 티에플로의 벽화, 수많은 태피스트리로 장식되어 있어 화려함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
145여 명을 수용하였던 비단, 벨벳 벽과 크리스털 샹들리에가 걸려 있는 축제형 식당, 역대 왕의 접견실과 왕비 거실의 컬렉션, 아랍풍 그림이 그려져 있는 도자기, 왕들이 소유하였던 우아한 무기나 갑옷 등 예술품의 보고다.
왕궁을 관람하고 밖에 나와 서편을 바라보면 카사데캄보 공원, 스페인의 황량한 풍경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우거진 숲이 있다. 그리고 멀리 만사나레스 강과 오에스테 공원의 높이 솟은 분수 등 성채답게 주의가 시원하게 시야에 들어온다.
왕궁 뒤를 돌아 샤바다니 정원 옆 칼로 델 모로가 끝나는 거리를 건너가면 고야의 판테온에 다다르게 된다. 마드리드에는 고야의 손길이 여기저기 배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스페인의 옛 왕도(王都) 톨레도
안토차(Antocha)역에서 기차를 타면 톨레도로 갈 수 있다. 이 역은 1992년 신축한 건물인데 실내 식물원처럼 청결하고 조용하다. 세빌랴(Sevilla)로 가는 고속열차 AVE도 이곳에서 출발한다. 톨레도행 기차는 하루에 10차례 있는데 우리가 탈 기차는 14시 25분에 떠난다. 목적지까지 약 1시간 20분 소요. 톨레도역에 내리니 타일로 모자이크한 대기실 벽화에 눈이 간다. 이슬람 문화의 흔적이 현대에도 이어져 숨 쉬고 있다. 시내버스를 타고 산마을에 오른다. 톨레도의 유적은 비교적 원형대로 꾸밈없이 잘 보존되어 있다.
마드리드에서 기찻길로 75km 지점에 있는 왕도 인구 8만 5천여 명. 메세타를 관통하는 타호강(Tajo 이 강은 포르투갈 리스본으로 흐른다) 변에 있으며, 역사와 미술로는 마드리드를 능가하는 데도 있다. BC2세기에 로마의 식민 도시가 되어 8~11세기에 서고트의 중심지로서 발전하였다.
이어 무어인의 침입 이후에는 톨레도 왕국의 수도로서 상공업의 중심지가 되었는데 그중에서도 도검, 무기의 생산으로 알려져 있다. 그 뒤에 카스티야의 문화, 정치의 중심지로서 더욱 발전하였다. 1561년 펠리페 2세의 마드리드 천도로 정치적 중심지의 지위를 상실하였다.
버스 종점은 소코드벨 광장(Plaza de Zocodover)에 있다. 여기를 기점으로 원을 그리듯 예술성이 높은 카테드랄(Catedral), 전쟁의 역사를 말해주는 알카사르(Alcaza) 요새, 성화의 거장 엘 그레코의 박물관을 비롯한 13세기 고딕식 사원, 무어 풍의 왕궁과 성벽, 유대교회 등 이색 건조물을 보면서 기독교, 유대, 이슬람 문화가 공존하였던 옛 모습을 음미해 본다.
미래를 투자한 여왕의 꿈
15세기 스페인도 분열되어 있었다. 남쪽은 이사벨라(Isabella) 여왕의 카스티야, 북은 페르난도(Ferando V)왕의 아라곤, 남부에는 무어인들이 코르도바를 중심으로 활약하였다. 이 혼돈상태에서 이사벨라와 페르난도의 결혼을 계기(1469)로 공통정치를 하는 왕국을 이루고 수도를 톨레도에 두었다. 두 나라의 군대를 병합하여 그라나다에 있는 무어인을 스페인에서 몰아내고 염원이던 통일(1479)를 하게 되었다.
이때 콜럼버스가 나타나서, 이사벨라 여왕에게 대서양 항해 탐험을 헌책했다. 자금과 함께 선박 2척을 후원함으로써 이사벨라는 콜럼버스를 통하여 미래에 투자한 것이다. 이사벨라가 어떤 여성이었을까? 그 여자의 배짱, 그의 통찰력과 믿음에 감격하지 않을 수 없다.
당시 왕국의 통일과 미래의 투자로 인하여 네덜란드령, 이탈리아령, 독일의 함스부르크령을 통괄하여 <태양이 지지 않는> 스페인 제국이 출현하였고, 남북 아메리카의 정복과 식민지 건설을 독점하게 되었다.
통일 스페인에서 보는 바와 같이 국토의 통일은 다양한 의미가 있다. 그 위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이것이 스페인 왕도 톨레도가 한민족에게 주는 크나큰 선물이 아닐까.
예술의 나라 스페인, 촌사람처럼 어수룩하게 보이면서도 정열적인 마드리드 사람들에게 매혹을 느끼게 한다. 투우에 열광하고, 차갑게 느낄 정도로 새파란 하늘 아래 자연을 즐기며 집시의 플라멩코를 추는 것은 스페인 사람들에게 혼혈의 피가 흐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간교한 돈환(Don Juan), 불같은 정열의 카르멘이 있는가 하면, 정신병자이면서 이상주의자 돈키호테(Don Quixite)가 숨을 쉬는 나라, 그리고 우리의 뇌리에 살아있는 <애국가>, <한국환상곡>의 작곡가 안익태(安益泰, 1906~1965) 선생이 일생을 마친 곳, 스페인에 더욱 정이 간다.
이국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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