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과 인도 이야기(下) 유주열 기원전 3,600년 경 현생인류(호모 사피엔스) 일부가 아프리카를 빠져나와 아시아와 유럽의 경계인 코카서스(캅카스) 산맥에 살았다고 한다. 인도·유럽인으로 분류되는 현생인류 일부는 기원전 2,400년경 서쪽으로 건너가 유럽의 게르만족 슬라브족 라틴족 켈트족 등이 됐으나 기원전 1,500년경 동남 방향으로 내려와 이란 고원을 거쳐 힌두쿠시산맥을 넘어 인도아대륙으로 들어온 인류는 인도아리아인으로 불리었다.
일찍이 인더스강 문명을 일으킨 인도 원주민 드라비다족을 남쪽으로 내쫓거나 노예로 삼고 새로운 인도를 건설했다. 아리아인들은 피부가 밝고 코가 높은 데 비해 드라비다인은 피부가 어둡고 코가 뭉툭하여 쉽게 구별됐다. 정복자 아라아인은 인더스강 상류의 5개 강이 흐르는 지역(펀자브 지방)에 정착을 했으나 계속 유입하는 아리아인들로 인구가 늘어나 새로운 목초지를 찾아 동쪽으로 이동했다. 그들은 야무나강과 갠지스강 유역의 비옥한 평원을 차지하게 됐다. 말을 타고 유목민 생활을 해오던 아리아인들은 비옥한 농지와 함께 소를 발견, 우경 농업을 시작하면서 농업 생산성이 높아지고 인구가 급격히 늘어났다. 그들은 여러 가축 중에 우유와 노동력 그리고 땔감을 제공하는 소(牛)의 중요함을 깨닫고 신성한 동물로 보호하기 시작했다.
아리아인들은 사제 브라만을 중심으로 철기를 이용한 농경사회를 구축하고 피부색을 근거로 브라만-크샤트리아(귀족)-바이샤(상인)-수드라(노예)의 4계급의 브라만교를 완성했다. 브라만교는 후에 불교의 교리를 흡수, 힌두교로 발전, 오늘날 인도의 주류 신앙이 되고 있다. 인도를 남북으로 가르는 데칸고원 이북을 차지한 아리아인들은 기원전 600년경 중국의 춘추전국시대가 연상되는 16대국으로 분열되어 있었다. 케팔로스그리스를 통일한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대왕(알렉산드로스 3세)이 동방원정에서 이집트와 페르시아를 꺾고 ‘세계의 끝’이라는 인도아대륙을 침공한 것은 기원전 326년이었다. 알렉산더대왕은 페르시아의 잔당을 추격, 인도의 코카서스라는 힌두쿠시산맥을 넘어 펀자브 지방을 침공했으나 갠지스강을 앞두고 병사들이 반대로 말머리를 돌려 인더스강 하류와 아라비아해 연안을 따라 회군한다. 알렉산더대왕은 제국의 수도 바빌론에 돌아와서 아라비아반도의 정벌을 계획하던 중 31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알렉산더대왕의 인도 침공에 자극을 받은 인도 16대국의 하나인 찬드라굽타 마우리아가 BC 322년 마가다(지금의 비하르주 남부)에서 마우리아 제국을 건설, 알렉산더대왕이 남긴 그리스계 왕국을 정복하여 국력을 키웠다. 3대 아소카왕은 인도의 남부 일부를 제외하고 인도아대륙을 처음으로 통일했다. 아소카왕은 왕이 되기 위해 수십 명의 형제를 살해한 개인사와 통일 전쟁 중 동포를 잔인하게 살육한 죄를 씻기 위해 불교에 귀의하고 개인 해탈을 중심으로 하는 상좌부 불교신앙을 주변국에 전파했다. 1945년 8월 수백 년간 외세로 지배를 벗어나 독립한 인도는 인도인의 자존심인 첫 통일왕조로서 최대의 영토를 지배한 아소카왕이 세운 사자상 기둥머리를 국장으로 삼고, 인도의 국기(삼색기) 중앙에 푸른색의 아소카 차크라(24개 바큇살의 법륜)를 그려 넣었다. 인도 역사상 최초의 대제국 마우리아 왕조도 아소카왕이 죽은 뒤 급속도로 쇠약해져 건국 135년 만에 멸망하고 인도는 다시 분열과 혼란에 빠졌다. 그 후 중앙아시아의 대월지국이 흉노에게 나라를 빼앗기고 남하했다. 1세기경 월지 가문의 일부가 북인도를 침공하여 지금의 아프가니스탄 간다라 지방을 중심으로 쿠샨왕조를 세웠다.
이 무렵 불교는 자신의 해탈에서 중생구제를 목적으로 하는 대승불교로 바뀌면서 알렉산더대왕이 가져온 헬레니즘의 간다라 문화가 불교와 융합, 오늘날 우리가 보는 불상이 만들어져 중앙아시아와 중국을 거쳐 한국과 일본에 전파됐다. 쿠샨왕조는 동서무역으로 번영했으나, 4세기경 북쪽의 유목민 침략과 동쪽으로 인도계 굽타 왕조의 건국으로 멸망했다. 쿠샨 왕조가 사라진 후 갠지스강 일대를 차지한 굽타 왕조는 데칸고원 이북의 인도를 200여년 지배했다가 6세기경 몰락하면서 인도는 당시 분열된다. 굽타 왕조에서는 민족의식이 싹트면서 인도 고유의 힌두교가 널리 전파되어 산스크리트어에 의한 문학의 발전과 함께 새로운 건축양식 그리고 수학 등 자연과학이 발전했다. <대당서역기>를 쓴 당나라 현장법사가 굽타 왕조가 멸망한 북인도에 7세기경에 다녀갔고 신라 고승 혜초는 8세기경 북인도 5개의 소왕국과 그 인근 여러 나라를 여행하고 세계 4대 여행기로 알려진 <왕오천축국전>을 저술했다. 한편 7세기 이슬람교의 창시자 무함마드가 사망한 후 그의 측근 중에서 선출된 칼리파가 페르시아의 사산 왕조를 멸망시키고 이베리아반도와 북아프리카를 포함한 광대한 영토를 차지한 우마이야 및 아바스왕조의 칼리파 제국을 세웠다. 10세기 아바스 왕조 말기 튀르크계 이슬람 세력이 북인도로 침공, 술탄 델리 왕조 등 이슬람 국가를 세운 것을 시작, 북인도에는 이슬람 세력이 수많은 소왕국을 건국했다. 이 시대에 카스트 제도에 불만이 있던 인도인이 평등을 주장하는 이슬람으로 개종하는 사람이 많았다.
16세기 아바스 왕조를 멸망시킨 몽골제국 칭기즈칸의 후예 티무르의 후손인 바부르가 북인도로 들어와 무굴(몽골의 페르시아어)제국을 세우고 인도아대륙 대부분을 지배했다. 초기 무굴 황제가 비이슬람교도에 대한 과세 지즈야(인두세) 폐지 등 힌두교도에 대한 포용정책을 시행했을 때는 부강했으나 아우랑제브 등 후기 황제는 지즈야를 부활하는 등 힌두교도를 탄압하자 종교적 반발에 부딪혀 왕조가 쇠퇴하기 시작했다. 이 무렵 영국과 프랑스가 자국의 동인도 회사를 앞세워 인도의 남동부 해안과 벵골만을 통해 진출했다. 18세기 두 나라는 플라시 전투에서 충돌, 승리한 영국이 100년간 동인도 회사를 통해 쇠락한 무굴제국의 인도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1857년 세포이(영국의 동인도 회사가 고용한 인도인 용병) 난을 계기로 영국은 동인도 회사를 해산시킴과 함께 이름뿐인 무굴제국을 멸망시키고 빅토리아 여왕을 초대 황제로 하는 인도제국(British Empire of India)을 건국했다. 인도는 무굴제국 및 인도제국 420년 외세의 식민지로 신음하다 1945년 2차 세계대전의 종전과 함께 독립했으나 종교적인 이유로 이슬람의 파키스탄(후에 방글라데시로 다시 분국)과 힌두교의 인도로 분할된다. 인도라는 이름이 나오게 한 인더스강이 파키스탄에 포함됨에 따라 인더스강이 없는 인도가 됐다.
8월 15일은 우리에게는 광복절이지만 인도는 독립기념일이다. 두 나라는 2차 대전 후 탄생한 신생 독립국의 공통점이 있다. 우리 정부는 1962년 뉴델리에 총영사관을 설치했다. 노신영 총영사(전 국무총리)가 1972년 5월 부임, 인도와의 수교(대사급 공식 관계)를 위한 외교 노력 끝에 1973년 12월 수교했다. 그 후 1976년 이범석 대사(전 외무장관)가 부임, 청사와 관저를 신축하는 등 주요 공관으로서 위상을 세웠다. 인도 델리의 야무나 강변에 위치한 무굴제국의 붉은 요새(Red Fort)가 연상되는 인도 특유의 붉은 사암 벽돌로 지어진 대사관 건물은 지은 지 50년이 된 지금도 아름다운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21세기는 인도의 세기’라고도 한다. 세계 최대 인구를 가진 인도는 지난해 영국을 밀어내고 GDP 기준 세계 5위의 경제 대국이 됐다. 내년 2025년에는 일본을 제치고 세계 4위를 차지하고 수년 내에 독일을 능가, 미·중에 이어 G3 국가로 부상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인도계 미국인 경제학자가 <두 개의 인도(Broken India)>라는 저서에서 인도의 빈부 양극화 현상과 정치적 부패, 도덕적 실패 등 이유로 인도를 과신하는 ‘인도 열풍(India Hype)’을 경계하고 있지만, 인도는 독립 100주년이 되는 2047년까지 명실공히 선진국으로 도약한다는 국가 비전 ‘Viksit Bharat(선진인도) @ 2047’을 추진하고 있다.
인도의 유구한 역사와 찬란한 문화는 불교국가였던 우리의 삼국시대부터 많은 영감을 주었다. 인도의 거대한 내수시장과 젊은 노동력을 갖춘 매력적 생산기지는 삼성, 현대, LG 등 우리의 주요 기업이 1990년대 인도의 경제개방정책에 호응, 적극적인 투자를 해왔다. 미국이 안보와 경제 측면에서 인도와 태평양을 묶으려는 상황에서 글로벌 기업들이 인도로 향하고 있다. 2014년, 독립 이래 만년 여당 같았던 네루 가문이 중심이 된 인도국민회의(INC)를 꺾고 집권한 인도인민당(BJP)의 나렌드라 모디 총리는 현란한 외교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는 미·중·러의 새로운 그레이트 게임의 중심에서 글로벌 사우스(개발도상국)의 리더 국가의 존재감을 통해 새로운 바라트(Bharat, 인도의 힌디어 명칭)의 선진화를 지향하고 있다. “나마스테 바라트!”(인도, 행운을 빕니다) <저작권자 ⓒ 실버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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