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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 문화 확산 효과...효자 송도 선생 추모 행사의 의미

이국영 기자 | 기사입력 2023/10/24 [16:09]

효 문화 확산 효과...효자 송도 선생 추모 행사의 의미

이국영 기자 | 입력 : 2023/10/24 [16:09]

효 문화 확산 효과...효자 송도 선생 추모 행사의 의미

 

202310월 효의 달을 맞아 울산시효문화선양회(회장 박성부)107() 10~12시 울산광역시청 1층 시민홀에서 효자 송도 제2회 울산호열 추모행사 및 효학술세미나를 개최했다. 주제는 효가 살면 가정이 화목하고, 인성교육도 바르게 되고, 사회도 건강하게 될 것이다이었으며, 울산광역시가 후원하였다. 이 행사에는 박성부 효문화선양회회장, 정석윤 송도선생 효도관 건립사업 추진위원장, 송석관 송 씨 문중 대종회 대표 등 100여 명이 참석하였다.

추모제는 제관복한복 착용 참여자 돗자리 도열 큰절 두 번. 양복평상복착용자는 지정석에서 공수경례 두 번을 하였다.

추모기념식은 효자 송도 상영과 내빈 소개와 인사말씀이 진행되었다. 정석윤 위원장은 울산 북구 유래사를 읽고 송도 선생 효행을 알게 되었다. 현재 효자 송도 선생을 연안 송 씨 문중과 협조하여 저의 한평생 일생일대의 소원인 효자 송도 선생 효도관 건립을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서 효학술세미나에서 발제자 김덕균 효학박사 성산효대학원대학교 교수가 효의 현대적 해석과 효교육의 활성화 방안-효행장려 및 지원에 관한 법률의 적용 중심를 발표했다.

 

당시 매우 두드러진 송도(宋滔)의 효행

 

울산지역 최초의 생원(生員) 송도(宋滔)는 조선 초기 효자였다. 송도는 생원으로 평소에 학행이 있었고 부모 섬김에 정성을 다하였다. 부모가 오랜 병을 앓고 있었는데 10여 년 동안이나 간호하였다. 아버지가 병환으로 사물을 볼 수 없게 되었는데 과거에 합격하여 돌아와서 부모님을 뵙자 두 눈이 홀연 떠졌다.

모친이 병이 깊어 물고기회를 구하고자 하였으나, 가난하여 마련할 수가 없어 얼음판을 두드리며 울었다. 그러자 붕어가 튀어 나왔다고 한다. 1년 사이에 부모가 잇따라 돌아가시자 몸소 흙과 돌을 져다 무덤을 만들고 유교식 예법에 따라 사당을 세워 신주를 모시고 새벽마다 배알하고, 때에 맞추어 제사 지냈다.

당시까지 불교식 장례가 일반화된 상황에서 송도의 효행은 매우 두드러진 것이었다. 또한 제사를 지내려고 제수를 구하니 산에 꿩이 날아들어 왔다고 한다.

 

효문화 진흥의 첫째는 효행 실례를 알리는 것

 

이 사실이 조정에 알려져 1428(세종 10) 효자로 정려되고 표창을 받았다. 이러한 사실은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과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與地勝覽) 등에 기록되어 있다.

 

효문동(孝門洞)이라는 마을 이름도 그러한 사실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한다. 연안 송 씨 족보에는 정려비가 본래 효문동에 있었으나 1737(영조 13) 울산도호부 서쪽 연못 인근으로 옮겨 세웠다고 한다.

 

조선의 사신이 중국 명나라 신종에 나아가니 천조에서 조선의 인물에 대하여 물었으므로 대답하기를 송도와 박효랑의 하늘에 통하는 효도가 있다고 하였다.

 

신종 황제의 사패문(賜牌文 공이 있는 사람에게 산 등을 하사하거나 부역을 면제해 주었다)에 이르는 중원은 대국으로서 왕상의 효도가 있었더니, 조선은 소국이지만 송도에 효도가 있다하고 홍문을 내렸다.

 

정려비 앞면은 효자성균생원송도지려(孝子成均生員宋稻之閭)라 적었으며 뒷면에는 송도의 효행을 기록하였다.

 

정려 왼쪽에 깨어진 비석은 강희임진(康熙壬辰) 팔월(八月)’이란 구절로 보아, 1712(숙종 38)에 세웠던 것으로 보인다.

 

울산 중구 우정동에 있는 비석과 비각을 2006년 이곳으로 옮겨왔다.

 

어제 시에 이르기를

효자는 사람에게 백행의 근원이니

하늘을 감동시킨 그날 대조에 들려오네

천 년토록 호해의 아름다운 곳에서

행로가 오히려 송 씨 문중에 전해지네.

 

정려는 앞면에는 효자성균생원송도지려라 적혀 있으며 뒷면에는 성도의 효행을 기록하였다.

 

본문이미지

 

 

이상은 효자 송도의 효행을 알리는 전파 사례이다. 최근 정석윤 위원장은 60여년 송도 선생의 효 사상을 연구해 왔으며, 송도 선생의 홍살문 보수와 정려비를 찾아내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송 씨 문중에서는 그의 효 정신을 인정해 유적비 제막에 맞춰 정석윤 위원장의 공적비를 세우게 된 것이다.(사진)

 

이국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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