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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 지하철 무임승차 제도에 대한 고찰

이 준 기자 | 기사입력 2024/02/05 [10:54]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 제도에 대한 고찰

이 준 기자 | 입력 : 2024/02/05 [10:54]

                     노인 지하철 무임승차 제도에 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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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이준석 개혁신당대표가 노인지하철무임승차제도 폐지 공약을 발표하면서 오랜 논쟁에 다시 불을 붙이고 있다. 지하철 운영회사의 적자 문제를 해결하고 세대 간 차별을 없애자는 것이 그 취지이다. 대신 노인들에게 일정한 액수의 현금을 지급하자고 제안하고 있다. 젊은 층의 표를 의식한 정치적 계산이 깔려있다. 문제는 이 제도의 본래 취지를 전혀 도외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노인지하철무임승차제도는 제도창설의 취지부터 현재 운영 목적에 이르기까지 돈의 문제를 떠나 훨씬 더 깊은 뜻이 있다는 점을 먼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필자가 지금부터 45년 전인 1979년 이 제도를 건의한 배경은 돈의 문제보다 경로우대 정신이었다. 당시 보건복지부 노인복지담당 공무원으로 소련에서 열린 국제사회보장협회 회의에 참석한 것이 그 계기가 되었다. 모스크바대학 앞에서 어느 할머니가 시내버스를 타면서 돈 대신 하얀 종이를 내는 모습을 보고 현금을 내고 타는 대학생에게 이 할머니는 어떻게 하얀 종이를 내느냐고 물어보았다.

 

그 학생 대답이 소련에서는 노인우대정신에 따라 노인들은 버스요금을 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공산주의 국가에서 노인을 공경하는 이런 제도를 운영한다는 것이 신기했다. 귀국하자마자 장관에게 출장보고를 하면서 공산주의 국가도 이런 제도를 운영하는데 동방예의지국이라고 하는 우리나라가 노인을 공경하는 제도를 운영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보고했다. 전체주의국가의 복지제도를 본받자는 것이 아니라 노인을 공경하는 우리의 경로사상 정신을 살리자는 것이 그 취지였다.

다행히 이 제안이 받아들여져 그 이듬해 1980년 어버이날 5월 8일 65세 이상 노인 에게 지하철, 버스 등 서비스 요금 50%를 할인하는 경로우대제가 시작되었다. 그 해4월 11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경로우대제 실시 안의 입법취지를 보면 이 제도의 뜻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그간 후손의 양육과 이 나라 사회의 발전을 위해 일생을 바쳐온 노인들에게 철도서비스 요금의 할인으로 일상생활 상 편의를 제공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전통적 강점인 경로효친의 인륜 미덕을 기려 물심양면으로 노인복지에 이바지하고 함.’

돈보다 국가사회 발전에 기여한 노인에 대한 경로우대 정신을 강조하고 있다.

영국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한 나라의 문명화 정도를 알려면 그 나라에서 노인들이 대접받는 것을 보면 안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20세기 복지국가가 발달하면서 노인들이 잘사는 유럽제국을 염두에 두면서 한 말이지만 노인을 공경하는 문화가 발달한 한국 등 동아시아 제국의 경우도 생각하면서 이 말을 했을 것이다.

요즘 한국에서 노인들이 지하철을 무료로 이용하면서 만들어지고 있는 노인생활문화의 현장을 보면 토인비의 이 말을 연상하게 한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노인들이 살아가는데 지하철 이용 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 대부분 노인이 도시에 살고 있고 이들 노인의 대부분이 지하철을 이용하면서 생활하고 있다. 지하철은 이들 노인에게 생활의 공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직장에 나가 일할 때는 말할 것도 없고 집에서 놀고 있는 노인들도 대부분 지하철을 이용하고 있다. 지하철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쉽게 지하철을 탄다.

 

하루 종일 집에서 무료하게 지낼 노인들이 지하철 덕분에 밖으로 외출을 한다. 밤에 잠이 오지 않는 노인들이 새벽같이 일어나 서울 2호선을 타고 시내를 한 바퀴 돌고 와서 집에서 아침식사를 한다. 이렇게 지하철을 이용함으로써 얻는 노인층의 건강 및 생활편익 효과를 돈으로 계산하면 연간 4천억이 넘는다는 연구보고도 있다.

주말 친구들 모임에서 지하철을 공짜로 타고 어디서 어디까지 왔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것은 우리나라 노인사회에서 아주 흔한 일이다. 지하철 이용이 하나의 문화현상이 되고 있는 것이다. 오래전 미국으로 이민 갔다가 고국을 방문한 교포노인들이 한국에 오면 가장 부러운 것이 노인들의 지하철 무임승차제도라고 말하고 있다. 돈 천 원, 이 천 원 문제가 아니라 노인을 공경하는 경로우대제도를 운영하는 조국이 자랑스럽다는 것이다.

얼마 전 미국 뉴욕타임즈는 전면 기사로 우리나라 노인들의 지하철 무료 이용 모습을 크게 다룬 적이 있다. 서울 1호선 지하철을 무료로 이용하여 의정부를 지나 소요산까지 단풍놀이 갔다 온 이야기를 쓰기도 하고, 한여름 더운 날 냉방이 잘 된 지하철 열차 안에서 모시저고리를 입고 부채를 부치면서 피서하는 모습을 기사로 쓰기도 하였다. 미국에선 전혀 볼 수 없는 이런 풍경을 하나의 생활문화 현상이라고 이 신문은 재미있게 소개하고 있다.

이쯤 되면 우리나라의 노인지하철무료이용은 하나의 생활문화라고 해도 될 것이다. 젊은 청장년층의 음악과 춤이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어 새로운 K 칼쳐라고 한다면 노인층의 지하철이용문화도 또 다른 하나의 K 칼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노인지하철무료이용에 따른 경제적 논란은 다른 관점에서 그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

노인인구가 크게 증가하는 초고령사회에서 노인의 연령기준을 상향조정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다. 국민 평균수명이 크게 연장되고 있기 때문에 노인을 분류하는 기준을 달리할 수도 있고 그렇게 할 경우 지하철무료이용범위도 조정할 수도 있을 것이다.

노인지하철무임승차제도를 경제적 관점, 세대 간 차별의 관점에서 보기보다 훨씬 더 큰 문화적 관점에서 바라볼 것을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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