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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윤재칼럼 광화문광장, 이제는 시민의 품으로 돌아와야...

최성남 | 기사입력 2021/09/30 [15:58]

양윤재칼럼 광화문광장, 이제는 시민의 품으로 돌아와야...

최성남 | 입력 : 2021/09/30 [15:58]

 

광화문광장, 이제는 시민의 품으로 돌아와야...

 

요즘 서울의 광화문 일대가 광장조성공사로 어수선하기 이를 데 없이 혼잡스럽다. 고박원순 서울시장의 죽음으로 차기시장 선출을 불과 3개월가량 앞둔 시점에 시장직무를 대행하게 된 서정협 행정1부시장이 201011, 연말연시의 혹한에도 불구하고 800억 원의 예산을 들인 광화문광장 조성공사를 시작하였다. 이에 대해 경실연과 도시연대 등 시민사회단체들은 시민들의 의견수렴이 없는 광화문광장 조성공사를 중단하라고 비판의 날을 세웠다.

 

그러던 중 공사구간인 세종로 일대에서 조선초기의 관아터와 유물, 유적들이 대거 출토되는 바람에 문화재위원회의 공사 중지 명령이 내려졌다. 새로 취임한 오세훈시장은 선거기간 중 광화문광장 공사를 비판했던 태도를 바꾸어 기존의 광화문광장 재구조화사업을 계속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오시장은 행정의 연속성을 중시하며 기 집행된 250억 원의 예산을 낭비하는 것이 비림직하지 않다는 뜻에서 원안대로 진행하겠다며, 광화문 월대복원과 육조거리의 재현, 그리고 광화문광장 주변지역과의 연계성 강화 등 역사성을 되살리고 광장의 완성도를 높여나가겠다고 한다.

 

광화문(光化門)은 원래 1395(태조4) 9월 경복궁의 정문으로 창건되었고, 정도전이 이를 사정문(四正門)으로 명명하였다. 그 후 1425(세종7) 집현전 학사들이 지금의 광화문으로 개칭하였다. 현재 광화문광장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 세종로는 이조 ,호조, 예조, 병조, 형조, 공조의 6조 관아가 들어서 있어 육조거리라 불렀다. 경복궁과 광화문은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270년간 중건되지 못하다가 1864(고종1) 흥선대원군의 경복궁재건으로 옛 모습을 되찾았지만, 한일합방 후 1927년 조선총독부가 광화문을 해체하여 경복궁 동북쪽으로 이전하였고, 6.25 전쟁 때 폭격으로 소실되었다.

 

1968년 박정희대통령 시절 광화문을 복원하였으나 콘크리트구조물로 만들어졌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러다가 19938월 김영삼대통령이 역사바로세우기운동의 일환으로 구조선총독부건물을 해체하고 경복궁을 복원하면서 국민적 지지를 얻기도 하였다. 노무현정부에서 광화문 복원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여 20108월에 완공을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처럼 광화문은 조선시대의 정궁인 경복궁의 정문으로 대한민국의 대표적 역사유적이지만 지난 700여 년 동안 파란만장한 세월을 겪으면서 지탱해오고 있다.

 

광화문을 정면으로 바라보는 광화문광장은 2008년 광우병사태로 수많은 시민들이 이곳으로 모여들어 시위를 벌였고, 2016년 세월호 사건으로 촛불시위의 중심지가 되어 결국에는 대통령의 탄핵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불러일으킨 역사적인 장소가 되었다. 우리나라의 도시에 광장이라는 공간이 등장한 것은 아마도 대한제국 말기 덕수궁 앞의 넓은 공지가 만들어지고 근대적 개념의 도시계획을 구상한 것에서 출발하였다고 보겠다. 그 후 일제치하에서 경성부청사가 들어서면서 광장이 만들어진 후 지금의 서울광장으로까지 변해왔다. 동양문화권에 속한 우리나라는 원래 광장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고, 이와 유사한 개념의 공간으로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시장터가 광장의 역할을 해왔다고 볼 수 있다.

 

광장은 고대 그리스의 정치적 공간인 아크로폴리스에서 비롯되어 로마의 포럼을 거쳐 서구문명의 대표적 공공공간(public space)이자 시민공간(civic place)으로 자리를 잡아왔다. 중세 유럽의 성곽도시는 교회가 중심이었고 교회 앞의 넓은 광장에서 여러 가지 활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17세기 바로크시대 절대왕정국가에서는 왕의 권위를 과시하기 위한 상징적 공간이 만들어졌는데, 대표적인 것이 나폴레옹 3세가 만든 파리의 샹젤리제거리이다.

 

 도시와 건축을 권력의 상징으로 생각한 나치독일의 히틀러는 파리와 모스크바를 능가하는 세계 최대의 도시를 만들기 위해 베를린을 개조한 게르마니아를 구상하였다. 이탈리아의 무쏠리니도 로마를 비롯한 많은 도시들에 정치적 목적으로 상징가로를 건설하면서 중세도시조직을 파괴했다고 비난을 받았다. 모스크바의 붉은광장이나 북경의 천안문광장, 평양의 김일성광장도 예외 없이 전체주의 국가의 상징광장으로 그 이름을 떨치고 있다.

 

우리의 광장도 더 이상 세월호 망령의 굿거리 장터나 광우병 소동의 난장판, 그리고 민주노총의 불법시위로 강점되어서는 곤란하다. 지금 서울시가 추진하고 있는 광화문광장이 정치적 군중시위나 집단투쟁의 장이 아니라 시민들이 언제나 자유롭게 즐길 수 있는 멋진 장소로 만들어져 시민들에게 사랑받는 곳이 되길 기대한다.

(실버타임즈 2021924)

 

발문: 광화문은 조선시대의 정궁인 경복궁의 정문으로 대한민국의 대표적 역사유적이지만 지난 700여 년 동안 파란만장한 세월을 겪으면서 지탱해오고 있다.

 

광화문광장이 더 이상 정치적 군중시위나 집단투쟁의 장이 아니라 시민들이 언제나 자유롭게 즐길 수 있는 멋진 장소로 만들어져 시민들에게 사랑받는 곳이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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