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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학 칼럼] 항일독립운동 없었으면, 대한독립도 없었다 -

최지정 기자 | 기사입력 2024/09/05 [16:33]

[정재학 칼럼] 항일독립운동 없었으면, 대한독립도 없었다 -

최지정 기자 | 입력 : 2024/09/05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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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항일독립운동 없었으면, 대한독립도 없었다 -

 

최근 뉴라이트를 비롯한 친일파 세력들이 항일독립운동을 폄하하는 일들이 빈번해지고 있다. 특히 김구선생을 비롯한 광복군 활동에 비판적인 자들이 등장하고 있다. 윤봉길 의사가 홍구공원에서 폭탄을 던졌다고 해서 독립이 되었느냐는 식인데, 특히 주목할 점은 김구선생을 비롯한 독립군들을 테러분자로 매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백범 김구 선생이 테러분자란 반역적 표현은 일본의 주장과 시각에 맞춘 것이었다. 일본은 단 한번도 일본에 대항하는 독립군들을 좋게 평가하지 않았다. 독립군들을 자신들이 세운 법질서에 대항하는 불순단체이며 불령선인(不逞鮮人)들로 적대하였고. 악의적으로 평가절하했을 뿐이다.

 

불령선인(不逞鮮人)이란 불령 즉 불온하고 불량한 조선인을 뜻하는 말로써, 일본이 자기네 말을 따르지 않는 조선사람을 싸잡아서 비하하던 말이었다. 그러니까 조선인들의 독립운동이란, 불령선인들이 일본제국에 불량하게 항거하고 싸웠다는 뜻이 된다.

 

백범 김구선생을 테러분자로 매도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일본인들의 시각에서 나온 표현이므로, 현재 일어나고 있는 한미일동맹을 위한 친일논쟁은 친일파이며 뉴라이트사관에 매몰된 더러운 쪽바리 시각이라 아니할 수 없다.

 

엄밀히 따지자면, 조선의 독립은 미국이 아니라 장개석 덕분이라 할 수 있다. 태평양전쟁이 한창이던 당시 과달카날전투와 미드웨이해전에서 승리하면서 미국은 승기를 잡게 된다. 이에 승리를 확신한 미국은 194311월 이집트 카이로에서 전후처리를 위한 회담을 갖는다. 영국의 처칠과 중국의 장개석이 참석하였다.

 

당시 미국은 조선의 독립문제엔 관심조차 없었다. 미국은 제1차세계대전 이후 차지한 일본의 영토만 무효처리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니까 1914년 이전의 영토는, 오히려 일본의 영토로 인정하고 있었다. 일본 역시 항복조건으로 조선을 일본영토로 인정받기를 희망하고 있을 때였다.

 

이때 장개석이 조선의 독립을 강력하게 주장한다. 조선은 일본영토가 아니라는 것이었고, 한일합방 이후 조선인들의 끊임없는 독립운동을 소개하기도 하였다. 그러니까 독립군 즉 광복군이 엄연히 존재하는 독립국가라는 주장이었다. 그리하여 카이로선언 조선의 독립을 명기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미군은 광복군의 존재를 알게 되었고, 광복군을 훈련시켜 국내로 침투시킬 계획을 세우는 것이다. 그러나 침투직전 일본은 멸망하였다.

 

따라서 미국은 일본을 무너뜨린 조선해방의 주체자이지만, 독립을 시킨 주체는 어디까지나 중화민국의 장제스, 즉 장개석이었던 것이다.

 

이 장개석은 백범 김구의 상해임시정부를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었다. 특히 윤봉길 의사의 홍구공원 거사는 장개석에게 크나큰 감명을 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므로 장개석의 조선독립 주장에는 김구를 비롯한 윤봉길, 이봉창, 홍범도, 김좌진 같은 열혈독립군들의 영향이 컸던 것이다. 따라서 이들 독립군들의 희생이 아니었다면, 장개석은 조선독립을 지지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조선을 중국의 일부로 주장했을 것이고, 우리는 중국의 속국으로 해방되었을거란 추측이다.

 

일본은 항복의 조건으로, 천황제 존속과 조선을 포함한 일본영토 전부를 협상조건에 넣었으나, 미국은 단호히 거절하고 '무조건 항복'을 주장한다. 그렇게 되어서 우리는 1945815일 한많은 해방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일본이 왜 한반도를 빼앗기지 않으려 했는지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그 중에서 자연재해는 일본이 해결할 수 없는 일이었다. 요즘 일어난다는 난카이대지진과 태풍 등 여러가지 자연재해는 일본의 아킬레스건이었다. 그리하여 일본인들은 사계절이 분명하고 지진 걱정없는 한반도 금수강산에서 살고싶었던 것이다.

 

실제로 일본은 조선인 남방이주계획을 갖고 있었다. 인도네시아나 말레이지아, 베트남, 필리핀 등지로 조선인을 이주시키고 자기들이 살기좋은 한반도에 들어와 살겠다는 꿈을 갖고 실행에 옮기기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그 꿈은 미국에 의해 좌절되었다.

 

아마 일본이 승리했거나 진주만 습격 이후 평화협상이 성공리에 이루어졌다면, 조선인들은 한반도에서 쫓겨나 지금쯤 남양군도 어디쯤에서 물고기 잡고 바나나 따면서 살고있을 것이다.

 

임시정부에 돈을 보내기 위해 도박을 하면서까지 가산을 탕진하던 경주의 부자. 옛 동지의 집을 찾아온 백범 김 구선생에게 낡은 처마밑에 숨겨둔 독립자금을 댄 동지들의 명단을 건네준 늙은 안주인, 돈을 보내면 들킬까봐 돈으로 소를 사서 소고삐를 들려주던 마이산 이갑용 처사.

 

독립군만이 아니라 이 땅의 이름없는 민초들이 벌인 독립운동은, 실제로 이 나라 대한민국의 독립과 건국을 가져온 위대한 투쟁이었다.

 

해방 후 신탁통치를 마치고, 북한인민공화국이 9월 건국되고 소련군이 194812월 물러갔다. 그리고 미군이 19496월 철수하면서 서울시청 청사 국기대에 성조기가 내려지고, 우리의 태극기가 올라갔다. 이 태극기가 올라가면서 대한민국은 진정한 의미의 독립국가가 되는 것이다.

 

누군가는 일본이 조선을 개화시키고 근대화시켰다는 주장을 하지만, 이건 일본인의 시각에서 바라본 하찮은 쪽바리식 주장일 뿐이다. 만약 일본이 없었다면, 우리는 유교국가로서 전통의 문화와 예를 지키며 동방예의지국 조선다운 근대국가로 더 아름답게 성장했을지 모른다.

 

남의 집 빼앗아놓고 남자들은 목을 베거나 밖으로 내보내 죽도록 일 시키고, 여자들은 첩으로 삼거나 정신대로 보내고, 집안 곳곳 보물들은 독차지하면서 철도 놓아준 것이 근대화란 말은 치욕일 뿐이다.

 

지금도 이런 정신나간 자들이 일본이 근대화시켜줬다면서 일본이 남기고 간 것들을 주섬주섬 헤아리고 있다. 적산가옥들이며, 일본인 소유의 공장, 현재 우리의 기업들이 대부분 일본이 남기고 간 것들이라 주장한다.

 

그러나 그 알량한 기업이나 공장들도 6.25로 인해 모두 폐허가 되었다. 그러므로 이 폐허 속에서 진정 대한민국을 일으킨 분은 이승만과 박정희 대통령이라 믿는다. 필자의 이 주장에, 너희 쪽바리 친일파들은 감히 이의있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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