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과 인도 이야기(上) 유주열 인도는 세계 최다의 해외 거주자를 가진 국가이다. 3,200만 명의 인도계 이민자들이 전 세계에 흩어져 활약하고 있다. 수년 전 2022년 10월 영국에서 리시 수낙 인도계 재무장관이 영국 총리로 취임하자 인도가 받은 수백 년 영국 치하의 서러움을 갚아 주었다는 흥분된 평가가 뉴스에 보도되기도 했다. 1963년 미국 캘리포니아 버클리 주립대학의 어느 캠퍼스 커플이 결혼했다. 신랑은 자메이카에서 이 대학에 유학 온 경제학도 해리스이고 신부는 남인도 첸나이에서 의과학자로 유학 온 샤말라였다. 그녀는 인도 카스트 최상위인 브라만 집안으로, 아버지는 영국의 식민지 통치하에서 관리가 되어 영국령이던 아프리카 잠비아에서 공직 생활을 했다.
샤말라 아버지의 개방적 사고와 교육열이 자녀들을 미국에 유학시켰다. 오빠가 위스콘신대학에서 경제학과 컴퓨터를 공부했고 언니는 산부인과 의사로 활동하고 있었다. 어느 날 학내 모임에 나갔다가 해리스를 알게 됐고 두 사람은 결혼에 이르렀다. 이듬해 첫 딸이 태어났다. 샤말라는 힌두교 행운의 여신 락슈미의 별칭이면서 연꽃의 의미를 가진 카멀라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2년 후 둘째 딸이 태어났다. 결혼 생활 9년 만에 샤말라는 성격 차이를 이유로 해리스와 이혼하고 두 딸과 함께 캐나다 몬트리올로 이주했다. 싱글 맘 샤말라는 의과학자 연구원으로 취업, 두 딸을 키웠다. 장녀 카멀라는 워싱턴DC에 있는 하워드 대학을 졸업하고 캘리포니아로 돌아와 샌프란시스코의 주립 법학대학원 헤이스팅스 로스쿨을 거쳐 주 정부 검사가 됐다. 그녀는 민선인 주 정부 법무장관 겸 검찰총장을 2기에 걸쳐 8년간 역임한 후 연방정부의 상원의원에 당선된다. 그리고 지난 4년간 바이든 대통령 정부의 부통령직을 수행하다가 금년 7월 조 바이든 대통령이 재선 도전을 포기하면서 불과 석달 앞두고 후보직을 물려받아 트럼프와 대결하게 된 것이다. 2016년 미국에서는 <힐빌리 노래(Hillbilly Elergy)>라는 책이 베스트 셀러가 됐다. 미국 동부의 등뼈 같은 애팔래치아 산맥의 산골 동네 사람으로 오하이오주의 몰락한 공업지대(rust belt)에서 태어난 백인 흙수저 JD 밴스가 내놓은 자신의 쓰라린 인생 회고록이다.
JD 밴스는 어린 시절 가난과 가정 폭력을 이겨내고 오하이오 주립대학을 거쳐 예일대 로스쿨에 입학하게 된다. 로스쿨을 졸업해도 로펌 취직 등 진로가 막막한 밴스에게 같은 로스쿨의 학우인 인도계 여자 친구가 법조인이 모이는 행사에 참석하게 하여 거물 변호사를 만나게 도와준다. 그러한 인연으로 밴스는 인도계 여자 친구와 결혼하고 그녀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정치 인생을 열어준 베스트 셀러 자서전을 저술하게 된다. 밴스는 오하이오주 상원의원이 되고 금년도 대선에서 최연소 부통령으로 당선됐다. 정치 입문 3년 만이다. 미국 역사상 최고령(78세) 대통령으로 취임하면서 2028년 재선에 출마할 수 없는 트럼프 대통령(1946.6생)의 혈기왕성한 밴스 부통령(1984.8생)의 정치적 입지는 갈수록 주목받게 될 것 같다. 밴스의 부인으로 30대에 미국 부통령 부인(Second Lady)이 된 인도계 여성 우샤가 화제가 되고 있다. 우샤의 아버지는 인도 마드라스 공과대학을 졸업하고 미국에 이민을 왔다. 어머니도 남인도 출신으로 생물학자다. 그들이 샌디에이고에서 만나 결혼하여 낳은 첫 딸이 우샤이다. 우샤는 리더십이 있으며 독서광으로 샌디에이고 명문고등학교를 졸업, 예일대 학부에서 역사를 공부했다. 그 후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석사를 하고 예일대학 로스쿨로 진학, 밴스를 만나게 된다.
힌두교도인 우샤는 부유한 이민자 인도계 집안의 맏딸로 흙수저 출신의 밴스와는 종교와 인생관이 달랐다. 그렇지만 로스쿨의 은사로 ‘타이거 맘’으로 널리 알려진 중국계인 에이미 추아 교수의 권유로 토론동아리에서 사귀다가 2014년 가톨릭교 신자인 밴스와 결혼하고 2남1녀의 세 자녀를 두었다. 사람들은 결손 가정 출신의 밴스가 어릴 때는 마약 중독의 어머니를 대신한 외할머니의 교육 그리고 성인이 되어서는 선도령(spirit guide) 같은 부인 우샤의 내조로 오늘날에 이르게 됐다고 말한다. 미국 사회는 수많은 나라에서 온 이민 사회이다. 순수 아시아계 인구는 전체 인구의 약 6% 정도로, 히스패닉 다음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아시아계에서 지금까지 선두였던 중국을 제치고 인도계가 1위(한국계는 5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소득 수준도 가장 높다. 한때 인도의 대표적 대미 수출품이 공과대학 졸업생이라는 농담이 돌았다. 1990년대 미국의 테크붐으로 인도 전국에 흩어져있는 공과대학(IIT)의 컴퓨터 관련 과학자들이 크게 환영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미국 테크 기업의 요람인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에 인도계가 차지하는 비율이 높다. 구글, IBM 등 주요 테크 기업의 CEO로 인도계가 활약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미국에서 인도계의 약진이 두드러진 것은 그들의 노력도 있겠지만 영어 구사 능력이 도움을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역사적 산물인지도 모르지만, 영어를 모국어처럼 구사하는 인도계가 많다.
필자가 미국에서 유학할 때 지인 중 한 사람이 영어가 능통한 인도계 유학생이었다. 그 무렵 미국 대학에서 선망의 조교(teaching assistant) 자리를 도맡아 차지하고 있는 유학생은 인도계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어려운 유학 생활에서 유급 조교의 수입은 생활에 보탬이 되어 많은 아시아계 유학생들에게 부러운 알바였다. 1980년대 아시아의 가난한 두 대국은 중국과 인도였다. 사람들의 관심은 개혁개방의 기치를 내건 중국이었다. 필자는 외교부 입부 후 미국의 대중국외교를 중심으로 떠오르는 중국(rising China)에 대해 공부할 기회를 얻었다. 2년간의 유학 생활 끝에 국제관계학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귀국했다. 외무부에 귀임해 보니 중국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가 아니고 뜻밖에 인도를 담당하는 서남아과로 배치돼 있었다. 신비의 나라 인도에 대해서 아는 게 없었는데 문뜩 떠오른 것은 인도의 시성(詩聖) 타고르였다. 일찍이 아시아의 황금시기에
빛나던 등촉의 하나인 조선
그 등불 한번 다시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
1913년 아사아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타고르는 ‘한국은 동방의 등불’이라면서 일제 치하의 엄혹한 시절에 우리 민족을 위로했다. 그로부터 111년 후 금년에 아시아인 여성 최초로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받게 되어 그의 예언이 허언이 아니었음을 증명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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