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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윤재 칼럼 국가권력과 국민통제의 기술

최성남 | 기사입력 2021/10/20 [17:38]

양윤재 칼럼 국가권력과 국민통제의 기술

최성남 | 입력 : 2021/10/20 [17:38]

양윤재 칼럼

국가권력과 국민통제의 기술

 

코로나19가 처음 번지기 시작했을 때, 우리나라의 초동대처가 대단히 신속했었다고 자화자찬하면서 K방역을 자랑삼아 홍보하던 때가 그다지 오래지 않은 것 같다. 그러고 나서 불과 2년도 채 되지 않아 확진자 수가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우리의 방역대책이 문제가 많다는 등 여러 의견이 분분하다

 

그러나 누가 뭐라고 해도 우리나라만큼 감염자를 추적하고 확진자를 관리하는 나라도 드물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나라는 모든 국민이 주민등록번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정부는 전 국민의 일거수일투족을 알고 있어 그만큼 관리가 용이하기 때문이다.

 

요즈음 사람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온통 숫자와 번호의 홍수 속에 묻혀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을 조금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온통 번호로 뒤덮여 있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한국사람은 이 세상에 태어나자 말자 국가로부터 주민등록번호를 받는다

 

전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주민등록제도이다. 사회생활을 처음 시작하는 초등학교 일학년이 되면 학생신분이 되어 번호를 받기시작해서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적어도 7개의 학생번호를 가지게 된다. 17세가 되면 주민등록증을 발급받아 모든 일을 그 번호에 의존하여 살게 되고, 남자들은 군대에 가면 평생 잊지 못할 군번을 갖게 된다. 예전에는 그토록 귀했던 전화가 이제는 누구나 손안에 넣고 다니는 세상이 되고 보니 전화번호는 주민등록번호만큼이나 일상생활에서 요긴한 정도가 아니라 없으면 큰일이 날 정도다.

 

이처럼 번호는 사람에게만 부여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도 번호가 홍수를 이룬다. 우리가 사는 집이나 아파트도 번호를 붙여야 하고, 번호로 된 주소가 없으면 찾아가지도 못한다. 도시의 모든 땅과 길도 번호가 있고, 매일 타고 다니는 버스와 지하철도 번호로 되어있다. 이처럼 번호는 우리들 일상생활에 없어서는 안 될 아주 유용한 것임에 틀림없다. 번호란 사전적 의미로는 차례를 나타내거나 식별하기 위해 붙이는 숫자라고 되어 있다. 그래서 복잡한 세상을 요령껏 살아가기 위해서는 사물을 구분하고 식별할 수 있는 번호는 필수불가결한 것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이처럼 유용하고 편리한 번호가 자칫 잘못 사용될 경우 개인의 사생활 침해와 인권문제 등 복잡한 법적문제와 국민의 기본권 문제가 대두되곤 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호주, 캐나다는 물론 일본 등 거의 모든 나라에는 국가신분증제도가 없다. 심지어 러시아나 중국은 물론 가장 감시가 철저한 북한에서조차도 태어나면서 부여되는 국민번호가 없다. 북유럽의 몇 나라에서 개인식별번호를 사용하고는 있지만 공적 용도로만 사용하도록 사용범위를 법으로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미국은 사회보장번호(social security number)가 있지만 개인이 원하지 않으면 발급받지 않아도 된다

 

영국에서는 국가라는 비인격적 존재가 국민을 통제할 권한을 인정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 국가는 국민 개개인의 사생활에 대해 알 필요도 없고 알려고 해서도 안 되며, 알아서도 안 된다는 무언의 합의가 국민들 사이에 이루어져 있다. 국가에게 많은 권력을 주면 안 된다는 것이 민주주의를 구축하기 위해 영국국민들이 쟁취한 민주시민의 기본정신이라고 한다.

 

특히 독일의 경우 헌법1항에서 인간의 존엄성에 비춰봤을 때 사람을 하나의 번호로 통합 관리하는 것은 그 자체로 위헌이라고 못 박고 있다. 일본에서 2015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마이넘버카드 제도는 2021년까지 28% 정도만 가입하여 실적이 매우 저조한 실정이다. 사생활침해와 정보유출을 우려하는 시민단체들이 헌법위배소송을 제기하면서 전면적인 시행에 제동이 걸려있는 모양이다. 이런 상황을 보면 국가가 국민을 관리하거나 통제한다는 것이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는 주장이 선진 민주국가들의 공통된 견해가 아닌가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류역사상 엄청난 변화와 발전을 가져오게 한 분류체계는 5000년 전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시작되어 르네와 다윈을 거쳐 원소주기율표에 이르기까지 인류역사와 함께 유지, 발전되고 있다. 포스트모던시대에 와서 규제와 통제, 획일성과 전체성에 대한 비판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근대 모더니즘의 중심가치인 효율성과 편리성 측면에서 번호만큼 인류문명의 발달에 기여한 것도 없을 것이다

 

더구나 첨단과학문명이 세상을 지배하는 AI시대에 인간은 정보의 홍수와 통제된 폐쇄회로 속의 번호로만 식별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버린 지 오래다. 막강한 권력을 부여받은 국가라는 존재는 이제 번호가 아닌 안면인식기술을 통해 국민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빅브라더가 되어버린 것 같아 참으로 걱정스럽다.

(20211013)

 

발문 : 우리나라는 모든 국민이 주민등록번호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정부는 전 국민의 일거수 일투족을 알고 있어 그만큼 관리가 용이하다.

 

 

첨단과학문명이 세상을 지배하는 AI시대에 인간은 정보의 홍수와 통제된 폐쇄회로 속 의 번호로만 식별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버린 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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