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의 심화를 향하여
직접 민주주의가 지켜지는 한 사회변혁의 길은 유연하게 나아간다. 하늘에서 보는 강물이 꾸불꾸불 오르락 내리락 곡선을 그리며 바다로 나아가듯이. 문명의 선인 직선으로 만들어진 제방은 자연의 선인 곡선으로 만들어진 풍부함에서 오는 미묘함과 다양성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20세기 후반 강 하구의 늪지대를 생산성 높은 평지로 메꾸려는 시도가 선진국 중심으로 행해진 적이 있다. 늪을 없앤 후 예기치 못한 부작용들이 나타났다. 늪의 풍요함을 인식하고 다시 늪으로 만드느라 부산을 떨었다. 유명한 우포늪을 평지로 만들 계획을 했다가 이런 사실을 알게 되어 백지화한 것은 다행이었다. 늪은 모든 것을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효율성을 넘어선 미묘한 생명작용으로 계산해 낼 수 없는 이익을 만들어낸다. 직접 민주주의로 여야가 바뀌었다 1%도 안되는 근소한 차이로 여야가 바뀌었다. 직접 민주주의가 아니라면 이렇게 작은 차이로 정권이 순조롭게 바뀔 수 있을까 이재명 후보가 당락이 결정되자 바로 결과에 승복한 것은 한국 민주주의의 성숙함을 향한 태도를 보여주었다. 미국에서 트럼프가 선거 결과에 승복하지 않고 부정선거라며 법원에 제소했던 모습과 큰 차이가 난다. 국회의사당에 트럼프 지지자들이 총기를 들고 난입한 것은 미국 민주주의에 흠집을 낸 중대한 사건이다. 다음 대선까지 많은 일들이 일어날 것이다. 간발의 차이로 대통령을 만든 야당과 새 대통령은 국민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미묘한 소용돌이들이 일어날 것이다. 이를 봉합하고 통합된 방향으로 이끌어갈 책임도 새 정부가 해야 할 몫이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거시적으로 보면 늪처럼 풍요로움을 만들어내게 될 것이다. 민주주의는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심화된다. 인간의 내면에 자리잡은 욕심과 질투, 두려움과 불안,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과 꿈을 향하며 부딪히게 되는 지난한 작업을 해내겠다는 의지가 민주주의를 지속시킨다. 민주주의에도 격(格)이 있다. 작년 아프가니스탄과 올해 우크라이나 사태는 민주주의를 지키려는 국가의 격이 하늘과 땅 차이인 것을 보여주었다. 세계가 우크라이나를 돕기 위해 하나가 된 것은 그들이 보여준 민주주의 국가를 수호하려는 단호한 의지에 동참하게 만들었다. 민주주의의 심화가 문제다 민주주의는 트라우마를 겪지 않으면서 사회를 변혁시키기 위해 고안해낸 장치다. 투표권을 여성과 노예와 어린이와 재외국민을 뺀 남성에 국한시킨 그리스의 민주주의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는 자유를 정치제도화 한 최초의 인위적인 결과물이다. 이후에 민주주의는 역사 속에서 다양한 시련을 거치면서 현대 민주주의로 변화 되어왔다. 일인한표의 투표권을 행사하는 직접 민주주의는 전체주의 국가를 뺀 나머지 국가에서는 당연시 되고 있다. 민주주의는 개인의 이익이 집단의 이익과 결부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집단의 이익과 개인의 이익을 조절하는 격(格) 있는 마음과 연결된다. 지금은 이미 개인의 생활이 지구촌 단위로 연결된 시대로 접어들었다. 민주주의를 보는 시야가 국가 단위에서는 물론이고 세계시민으로서 넓은 시각과, 상황의 추이를 볼 수 있는 높은 시각, 자유의 질을 느끼는 깊이가 요구되는 시대가 되었다. 민주주의가 심화되기 위해서는 넓이, 높이, 깊이가 통합된 시각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 자율적 공부가 생활화 되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자율적 공부로 통합적인 시각을 갖게 되면 ‘나’란 감옥에서 걸어나와 자유의 맛을 알게한다. 바로 민주주의의 심화에 필요한 요건이다.
정근원(대중교육가, 칼럼니스트) <저작권자 ⓒ 실버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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