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윤재 칼럼 봄비에 젖는 국민통합의 망상 봄을 재촉하는 봄비가 올해는 유난히도 늦게 내린 느낌이 든다. 아마도 산불로 온 산을 태우고 번져나가는 불길을 잡지 못한 안타까움이 더더욱 봄비를 기다렸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경북 울진과 강원도 삼척의 산불이 거센 바람을 타고 퍼져나가 2만여 ha의 산림을 태웠고, 강릉과 동해에서 발생된 산불은 4000ha의 산림을 태웠다. 서울의 40%에 해당하는 면적이 이번 산불로 피해를 입었다. 국내 최대 산불피해를 입었다는 2000년 4월 동해안에서 일어난 산불로 없어진 2만3794ha보다 넓은 면적이다. 이번 봄비로 그나마 메말랐던 대지가 갈증을 해소하는 그야말로 단비였기도 했지만, 경상북도와 강원도의 산불을 잠재우는데도 한 몫을 한 셈이다. 코로나로 2년 넘게 온 나라가 정신없이 허둥대는 와중에 동해안의 산불이 덮쳐 온 종일 불을 끄느라 바삐 움직이는 소방관들과 공무원들의 힘든 사투와 불길 속에 타버린 집과 축사를 멍하니 쳐다보며 망연자실, 발만 동동 구르는 산불피해 주민을 TV로 바라보는 국민들의 아픔 또한 안타깝기는 매한가지였다. 유럽에서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여 민간인과 군인을 무차별적으로 폭격하는 전쟁이 발발하여 전 세계를 불안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이런 가운데서도 우리는 20대 대선을 치루었고, 윤석열이라는 새로운 인물을 대통령으로 맞게 되었다. 이제 5월초면 새 정부가 들어서고, 지난 5년간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문재인의 나라도 끝이 난다. 촛불로 시작한 정부가 결국에는 산불로 끝을 내고야 말았다. 매년 오는 봄이지만 올해 맞는 봄은 어쩐지 달라 보인다. 간밤에 내린 봄비에 후두둑 떨어진 동백꽃이 유난히도 가엾게 보이고, 야산에 수줍은 듯 노랗게 피어나는 산수유와 분홍빛 매화도 향기가 나는 듯 마는 듯, 개나리도 그 노란빛이 사뭇 달라 보인다. 코로나로 생기를 잃은 인간들의 마음을 읽기라도 하려는 듯, 며칠 전 낮과 밤의 길이가 같아진다는 춘분이 지났건만, 아직도 만장 흐드러진 벚꽃을 맞을 채비가 덜 된 것 같아 조바심만 일 뿐이다. 겨우내 얼어붙었던 무겁고 두꺼운 흙을 뚫고 솟아오르는 파릇한 새싹의 경이로움 앞에서 우리는 우울했던 겨울과 코로나의 아픔을 떨쳐내고 파란 하늘 위로 나래를 펼쳐 보일 용기가 필요한 때다. 지난주에는 마치 새봄을 맞듯이 새 정부의 대통령 인수위원회가 구성되었다. 선거과정에서부터 국민통합과 협치라는 슬로건을 여야 할 것 없이 내세워 온 걸 보면, 새 정부가 가장 서둘러 해야 할 일이 아마도 국민통합과 협치인 모양이다. 그래서 국민통합위원장에 김대중정부에서 장관을 지낸 김한길을 내세우고, 지역균형발전위원장에는 노무현정부의 김병준을, 인수위원장에는 보수인지 진보인지 헷갈리는 안철수를 임명함으로서 문재인정부의 검찰총장 출신인 윤석열대통령 당선인은 이것으로 통합이라는 구색을 갖추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골수보수정당의 집권 하에서 가히 김대중, 노무현, 문재인으로 이어지는 진보정권의 핵심인사들이 모여 이루려는 국민통합이 과연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지 궁금하기 짝이 없다. 2021년 영국 킹스칼리지의 런던정책연구소에서 OECD 28개국을 대상으로 사회적 분열도를 조사한 결과, 한국이 12개 항목 중 빈부, 이념, 정당, 세대, 남녀, 종교, 학력 등 7개 항목에서 단연 1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프랑스 경제대학 세계불평등경제연구소에서도 한국의 불평등지수가 가장 높다고 인이퀄리티 리포트가 발표하였다. 일본의 리츠메이칸대학 이강국교수는 한국의 불평등은 부동산불평등이라고 주장하면서 상위 1%가 55%의 부동산을 소유하고 있다고 하였다. 이런 조사는 대부분 진보편향 학자들에 의해 조사된 자료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에 얼마나 객관적이고 사실에 부합되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지만, 지금 한국이 처한 여러 상황을 비춰볼 때 이런 조사를 마냥 무시할 수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선거 때마다 나타나는 지역 간 표 가름현상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우려의 목소리를 내어온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선거가 끝나면 또 똑같이 사회통합의 문제를 제기하고 지역과 이념, 계층과 세대의 갈등이 마치 나라를 파탄시킬 것같이 호들갑을 떤다. 그러다 시간이 흐르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흐지부지 되어버린다. 왜 그럴까 갈등이 없는 사회는 비판도 없고 발전도 없다. 서로 다른 것들이 나누어져 갈등을 일으키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자연스러운 현상을 마치 커다란 문제가 있는 듯이 과장하는 것은 바로 잘못된 정치인들의 선동일 뿐이다. 사회적 갈등은 절대로 없어지지 않는다. 어떤 사회든 서로 다른 집단 간에 갈등이 없는 곳은 없다. 다만 그 갈등을 어떻게 승화시키고 조화롭게 공존해 나가는가에 그 사회의 화합과 발전이 달려있다고 생각한다. <저작권자 ⓒ 실버타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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