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써 말이 많으니...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20일 뉴욕 유엔총회 연설 후, 미국 바이든 대통령과의 짧은 면담 이후 헤어지면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린 내용이 취재하던 카메라에 잡혀 언론에 공개되었다. 문제가 된 것은 윤대통령이 국가지도자로서는 입에 담지 말아야 할 비속어를 사용했고, 그것이 우리 언론을 통해 전 세계에 보도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더하여 보도된 내용의 진실성 여부를 떠나 그 말의 내용에 대해 대통령실의 대응이 15시간이라는 제법 오랜 시간 이후에 나왔고, 대변인의 입을 통해 발표된 내용마저도 국민들의 상식에 어긋나는 것이었다는 것이 문제를 더 확대시킨 결과를 초래하였다. 이에 더하여 대통령실과 여당인 국민의힘에서는 ‘대통령의 사적 발언’이 언론에 보도되기도 전에 야당의 원내대표가 미리 알고 있었으며, 이 내용과 관련하여 당내의 고위직들과 대책회의를 했다는 사실을 문제 삼아 정치적, 외교적 문제로 끌고 나간 것이 여야 간에 쟁점이 되고 있다. 이 문제는 당초 언론에 보도되었을 때, 대통령 본인이 즉각 자신의 말실수였음을 인정하고 국민들에게 잘못을 구했으면, 아무 일 없이 지나칠 수도 있는 아주 사소한 가십거리에 지나지 않았을 일이다. 그런 일을 두고 이렇게까지 온 나라가 시끄럽게 한 달이 넘도록 언론과 정치판과 가정의 밥상머리에까지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지금과 같은 세계적 경제위기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안보위기 상황에서, 특히 북핵문제가 하루가 다르게 급박해지고 있는 이 나라에서는 있어서는 안 될 소모적 논쟁일 뿐이다.
그러지 않아도 윤석열 대통령은 취임한지 불과 반년도 안 된 정치적 밀월기에 30%에도 미치지 못하는 지지율 때문에 노심초사 마음을 태우고 있는데, 이 같은 하찮은 대통령의 말실수로 국민들의 마음을 어지럽게 하고, 지지층마저도 돌아서게 만드는 것이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만도 하다. 어떤 이들은 이번 일이 전형적인 가차 저널리즘(Gatcha Journalism; 정치인의 실수나 해프닝을 꼬투리 삼아 집중적으로 반복 보도하는 행태)이라고 해당 언론을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모든 책임은 대통령 자신에게 있고, 대통령의 평소 언행이나 일반 국민들을 대하는 태도가 국민들 눈에는 썩 좋아 보이지 않거나 실망스럽다는 데 문제가 있다.
예컨대, 지난여름 온 나라가 태풍피해로 난리가 났을 때. 침수피해지역을 방문한 자리에서, 상황을 설명하는 공무원을 향해 대통령의 반말 지시가 문제가 된 적이 있었다. 이때 민주당에서는 대통령이 국민을 향해 ‘반말 짓거리’를 하는 것은 용납 못 할 일이라고 쏘아붙였다. 이때만 해도 그럴 수 있으려니 했었지만, 얼마 후 재래시장 방문 시에도 상인과 주변 사람들을 향해 또 반말로 대화하는 것을 두고 언론과 야당의 비판을 받아야만 했다. 이쯤 되면 대통령의 반말은 의식적이든 아니든 몸에 밴 버릇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평생을 수퍼 갑인 검사로만 지낸 사람에게는 반말과 같은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 큰 소란거리가 되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렵겠지만, 하대를 당하는 입장에서는 기분이 상하는 정도가 아니라 인간적인 모멸감마저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그야말로 갑질의 대표적인 직업이 판․검사와 의사, 고위공무원 등 평소 약자들을 주로 상대하는 직업을 가진 소위 ‘사(事,師,士)자 돌림의 사람들이 많다. 이들에게서 흔히 나타나는 현상 중의 하나가 상대방에 대해 반말을 하는 것이다. 나는 가끔 그들에게 ‘당신 아버지한테도 반말하십니까?’고 물어보고 싶은 충동을 느끼곤 한다. 우리말에 유독 존대어와 존칭어가 많고, 특히 말의 존대와 하대와 관련되어 벌어지는 시빗거리가 적지 않다. 이는 바로 말을 바르게 쓰지 않거나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고 말을 함부로 하는데서 벌어지는 해프닝에 지나지 않는다. 어떤 경우에는 싸움이나 논쟁의 핵심과는 전혀 상관없는 말투 때문에 싸움이 더 크게 비화되는 예가 허다하다. 국회의 국정감사장에서 벌어지는 논쟁의 상당부분도 바로 ‘왜 반말이냐?’로 회의가 파행을 겪는 일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중국 당나라 때 관리를 등용하는 시험에서 인물평가의 기준으로 신언서판(身言書判)의 네 가지를 보았다고 한다. 이 네 가지 중에 言이 있는 것을 보면, 말이 사람을 판단하는 데 있어 중요한 덕목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라 하겠다. 물론 말로써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천 냥 빚도 말로 갚는다’는 옛말처럼, 말이 가진 위력이나 영향력은 그만큼 크다. 조선 영조때 시조집, 청구영언(靑丘永言)에는 ‘말로써 말이 많으니 말 않을까 하노라’라는 시조가 있다. 노자의 도덕경에도 ‘말을 많이 하는 것은 가만히 있는 것보다 못하다’고 하며, 서양의 격언에도 ‘웅변은 은이요, 침묵은 금’이라고 하고 있다. 그만큼 말 때문에 일어나는 분란이나 화근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역사적으로 꽤 많았던 모양이다.
어느 나라 없이 국가지도자는 물론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사용하는 말은 일반 사람들이 하는 말과는 다르다. 그들이 하는 말은 바로 국가를 대표하고, 그 사회의 생각과 가치를 나타내는 매우 커다란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말 한마디 한마디라도 조심스럽게 해야 하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도 이제는 자신의 말투를 바로 잡아 앞으로는 이런 일로 국민을 실망시키지 않았으면 한다.
‘말로써 말이 많으니 말 않을까 하노라’
국가지도자나 사회지도층들의 말은 국가를 대표하고, 그 사회의 생각과 가치를 나타내는 커다란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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