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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학 칼럼] 봄 벌초를 하면서

한서하 기자 | 기사입력 2023/05/24 [09:46]

[정재학 칼럼] 봄 벌초를 하면서

한서하 기자 | 입력 : 2023/05/24 [09:46]

 

정재학ㅣ시인

 

 

정년을 하고 귀촌을 하면서 농촌생활의 낭만을 꿈꾸지 않았다면, 그건 거짓이다.

 

아침 안개에 젖은 채 들길을 거닐고, 텃밭 채소를 가꾸며, 석양이 되면 다시 들길을 거니는 낭만. 강아지들이 따라오면 더욱 좋을 것이고, 없으면 꿩울음소리와 들새들 둥지로 돌아가는 날개짓을 바라보는 것도 좋다.

 

그러나 장마철이 오고 뜨거운 태양이 쏟아지는 날이면, 어디로 피난을 가고 싶은 심정이 된다. 우선 풀이 무섭다. 제초제를 뿌리고 낫으로 베고 한숨 돌리고 있노라면, 비가 내린 어느날 다시 무성하게 풀이 자란다.

 

그 무렵 모기가 발생한다. 옛날 모기는 윙! 소리를 내며 공습경보라도 냈지만, 요즘 모기는 작고 조그만 것이 소리도 없이 다가와 피부에 붙는다. 그리고 엄청 가렵다. 긁고 긁다가 차마 무서워 방문 밖을 나서지 못한다.

 

파리는 손톱만한 똥파리가 득시글거리고, 음식이라도 땅에 떨어지면 집파리며 동네똥파리는 모두 몰려온다. 생선 말리는 망에 뭐 하나 넣어놓으면, 파리떼가 거의 군단급이다.

 

그러나 이건 약과다. 잠시라도 방심하면, 마당은 풀이 점령한다. 그리하여 곧 정글이 된다. 마당이 그 모양이니, 들이나 산야는 어찌 되겠는가. 그리고 우리 할아버님 부모님 산소는? 상상에 맡기겠다.

 

고향마을에 돌아온 이후로 산소는 내가 관리하기로 했다. 벌초는 한 해 세 번은 해야 하고, 제초제는 또 그만큼 해야 한다. 산소제초제라고 해서 놀랄 필요 없다. 잔디 다치지 않는 선택성제초제가 있다.

 

그러나 혹시 띠풀이라도 나면, 그땐 정말 각오해야 한다. 별놈의 수를 써도 죽지 않는다. 심지어 고무장갑 끼고 농약을 묻혀서 띠풀을 잡아당긴 적도 있다. 그래도 죽지 않는다.

 

봄 제초제는 반드시 해야 한다. 하지 않으면 온갖 나물들이 자란다. 달래 냉이 씀바귀 나물은 물론이고, 말 그대로 온갖 나물이 자란다. 쉽게 말해서 콩나물 빼고 다 자란다고 생각해야 한다. 제초제늘 해도 그러나 5월이 되어 자운영이 크면 봄벌초는 필수다.

 

아무리 그래도 여름 뜨거운 햇빛과 장마비 속에 다른 풀이 자란다. 다시 예초기를 메고 벌초를 한다. 추석맞이 벌초가 되겠지만, 추석 이후에도 풀은 자란다. 그러니 10월 벌초도 하지 않으면, 산소는 또다시 정글이 된다. 그 무렵 선택성제초제도 해야 한다. 띠를 잡으려면, 혹은 보래기풀이라도 나면 번성하는 것은 순식간이다.

 

누군가는 왜 이런 고생을 사서 하느냐고 묻는다.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씩 웃고 만다. 할아버님 부모님 산소가 있으니까 관리할 뿐이다. 없으면 안해도 될 것이다.

 

아무리 도망치고 싶어도 그러나 산소는 존재하고, 어디까지나 '있는 현실'이다. 이 현실로부터 나는 도망칠 수 없다. 산소는 고통도 아니고 구속이 아닌, 헤아리기 어려운 행복이기 때문이다.

 

벌초를 하면서, 어머니! 하고 불러보는 기쁨. 할아버지, 저 왔습니다 하면서 대화도 나누고, 아버님, 손주딸녀석이 아이를 잘 키우고 있답니다. 하면서 집안이야기도 전해주는 시간.

 

산소 곱게 단장하는 벌초는 살갑게 느꺼지는 대화의 시간이고 만남의 공간이다. 그리고 어머니 보고파서 가슴 미어지는 아픔도 맞는, 애틋한 장소이기도 하다.

 

어머니 살아 생전에, 어머니 산소를 꽃으로 단장하겠다고 약속했었다. 그리하여 10년이 넘도록 산소 주변에 온갖 꽃나무를 심었고, 그 꽃나무에 꽃들이 5월이 다 가도록 핀다. 종류가 50가지도 넘을 것이다.

 

조팝나무가 매화를 뒤따라 피고, 앵두꽃 살구꽃 자두꽃이 한번에 피고, 산사나무에 이어 모과꽃, 이팝나무도, 그리고 사과꽃 배꽃 도화꽃이 피고, 심지어 체리꽃도 핀다. 복분자 산딸기꽃 블루베리 다음엔 또 장미가 핀다.

 

산소에 꽃이 진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과일이 익기 때문이다. 6월, 우리 산소는 오곡백과가 익는다. 그 과일 다 먹지 못하고 동네 사람들과 나누어 먹는다.

 

가을에도 꽃 대신 산소엔 단감 대봉감들이 주렁주렁 열린다. 붉은 사과가 또한 종류별로 지천이다. 우리 할아버님, 부모님 모두 이 풍성하고 아름다운 풍경에 흡족하시리라 믿는다.

 

벌초를 하면서 산소를 돌보며 산다는 것은, 사는 날까지 내가 할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작은 일상일 뿐이다. 어떤 의미도 그 어떤 의문도 필요없는 그냥 살아가는 일이다. 낮엔 일하고, 밤엔 글 쓰면서 살면 되는, 세상에서 가징 단순하고 간딘힌 일이다.

 

사람으로 태어나, 효도만 잘하여도 그 사람의 인생은 실패한 인생이라 할 수 없다. 나아가 나라와 민족을 위해 충성의 길을 걷는다면, 그거야말로 성공한 인생은 아닐지라도 절대 실패한 인생일 수 없다고 생각한다.

 

어제도 오늘도 산소를 찾아, 어머니 곁에 앉아 저승에서 사시는 소식 물어보는 그것이 어찌 헛되다 말할 수 있겠는가.

 

산다는 것은, 산소에 무성히 돋아나는 풀을 베는 일이다. 그리고 죽는다는 것은, 어머님 옆자리에 팔을 베고 눕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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