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식품의약국(FDA)의 승인을 받은 초기 알츠하이머 치매 치료제가 나왔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6일(현지시간) 미국 식품의약국(FDA)은 일본 에자이(Eisai)와 미국 바이오젠(Biogen)의 ‘레켐비’를 뇌내 아밀로이드 이상이 확인된 경증에서 중등도의 알츠하이머 환자를 위한 치료제로 정식 허가했다.
치매를 유발하는 가장 큰 원인인 알츠하이머에 대한 항체 약물 ‘레켐비(Lequembi, 성분명: 레카네맙·lecanemab)’가 미국에서 조건부 허가 꼬리표를 떼고 정식 허가를 받았다. 알츠하이머는 치매를 유발하는 대표적 질환으로, 완치 개념의 치료제가 규제 기관의 정식 승인을 받은 것은 이번이 세계 처음이다.
레켐비는 알츠하이머 환자 뇌에서 비정상 단백질 '아밀로이드 베타'의 끈적한 침전물을 제거하도록 설계된 항체이다.
임상시험에서 초기 치매 환자의 인지 기능 저하 속도를 27% 늦춘 것으로 나타났다.
FDA는 임상 3상 시험(시험명: CLARITY AD)에서 도출된 데이터를 근거로 레켐비에 정식 허가를 부여했다. 해당 시험은 아밀로이드 병변이 확인된 경증에서 중등도의 알츠하이머 환자 1795명을 대상으로 레켐비와 위약을 대조 평가한 것이다.
미국 컬럼비아대학교 의대 신경과 전문의 로런스 호니그 박사는 "레켐비는 알츠하이머 치매 초기 환자와 경도인지장애 환자에 한해 사용할 수 있다"며 "치매가 상당히 진행중인 환자에게는 효과가 없고 오히려 안전성 위험이 높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레켐비 임상시험을 시행한 클리블랜드병원의 바박 토우시 박사도 "레켐비는 알츠하이머를 치료하거나 시간을 되돌리는 게 아니라 진전 속도를 늦추는 약"이라고 강조했다.
테레사 부라키오(Teresa Buracchio) FDA 산하 약물평가연구센터(CDER)장 대행은 “이번 결정은 알츠하이머의 원인을 근본적으로 표적하는 약물이 치매에 효과적이라는 점을 최초로 입증한 사례”라고 했다.
다만 FDA는 치매 위험 유전자인 아포지질단백질 E(ApoE)이 검출된 알츠하이머 환자의 경우, 뇌 영상 비정상 증상(ARIA) 발생 위험에 대한 주의를 요구하며 경고 문구 부착을 명령했다. 실제로, CLARITY AD 연구에서 ApoE 양성 환자들은 ARIA-H(뇌 미세출혈), ARIA-E(부종) 등의 ARIA 이상반응 발생률이 더 높았다.
레켐비는 뇌 신경 세포의 독성 단백질인 베타 아밀로이드을 선택적으로 표적하여 축적을 억제하도록 설계된 항체 약물이다. 본래 스웨덴 바이오아크틱(BioArctic)이 발견한 연구용 인간화 단클론 항체로, 에자이는 2007년 12월 바이오아크틱과 계약을 통해 ‘레켐비’의 권리를 확보했다. 이후 바이오젠이 2015년 5월 에자이와 협력 계약을 체결하며 ‘레켐비’의 개발에 합류했다.
앞서 FDA는 올해 1월 레켐비를 가속 승인 제도를 통해 조건부 허가한 바 있다. 책정된 레켐비의 연간 약가는 2만 6500달러(한화 약 3471만 원)로, 의료 보험 혜택 없이는 치료 받기에 매우 높은 가격이다.
이에 레켐비의 시장 성공은 보험 등재 여부에 달려있다는 분석이 나온 바 있다. 레켐비의 선조 격 약물인 동급 계열의 ‘아듀헬름(Aduhelm, 성분명: 아두카누맙·aducanumab)’은 지난 2021년 6월, FDA 허가를 받았지만 보험 등재에 실패하면서 시장에서 퇴출됐다.
미국 보험청(메디케어, CMS)은 조건부 허가 당시 레켐비의 정식 허가 전까지 보험 적용 범위를 확대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다. 하지만, 치키타 브룩스-라수어(Chiquita Brooks-LaSure) CMS 청장은 올해 4월, 미 의회 청문회에서 ‘레켐비’가 정식 허가로 전환될 경우 보험에 등재될 것이라고 전했다.
레켐비는 조만간 미국 시장에서 보험 급여가 적용되면서 관련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할 것으로 보인다. 글로벌 정보분석업체 클래리베이트(Clarivate)는 오는 2027년까지 레켐비가 10억 2000만 달러의 수익을 거둘 것으로 전망한 바 있다. 7일 환율 기준 한화 약 1조 3350억 원이다.
한편 에자이는 올해 6월 우리나라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레켐비의 국내 품목허가 신청을 제출한 바 있다. 대상 적응증은 뇌에서 베타 아밀로이드 병리가 확인된 초기 알츠하이머 환자에 대한 치료이다. 식약처의 허가 여부는 올해 하반기에 판가름 날 것으로 전망된다.
앞서 식약처는 지난 2019년 6월에 ‘레카네맙’이라는 성분명으로 에자이가 신청한 임상 3상 시험을 승인한 바 있다. 조기 알츠하이머병이 있는 시험대상자에서 BAN2401(레카네맙)의 안전성과 유효성을 확인하기 위한 공개 연장 단계를 포함하는 위약 대조, 이중 눈가림, 평행군 방식의 시험이었다. 해당 임상은 국내 환자 102명이 참여한 가운데 18개월(1년 6개월) 동안 진행됐다.
한서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