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 주자학(學) 개론(上)(下)
동북아공동체문화재단 이사장
요즘 들어서 아내가 잘 하는 일 중에 하나가 '아껴서 남 주는 일'이다. 옷이나 물건을 아껴서 교회의 이웃 돕기 행사에 참여하거나 '굿 윌 스토어' 같은 곳에 갖다 주기도 한다. 또 주일 마다 예배 후 자식들과 손주들이 우리 집에 모이면 점심도 같이 먹지만, 그때마다 아이들에게 "시간을 아껴서 공부해야 한다, 물건을 아껴 쓰고 음식물도 남기지 말고 깨끗이 먹어야 한다"는 등 잔소리를 자주 한다. 그래도 자식들이나 손주들이 큰 불평 없이 잘 듣고 순종 하는 모습을 보면 참 고맙기도 하다.
어제 밤에도 집사람과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아껴서 남 주는 일'에 대해 의논을 했다. 다음 주에 일본(11/12-14)에 다녀온 후 곧바로 몽골(11/15-18) 출장이 있는데, 몽골에 갈 때 집에 있는 물건을 챙겨서 지인들에게 선물로 주면 어떻겠냐는 얘기였다. 나는 백 번 좋은 일이라고 찬성했다 그러다가 옛날 20 여년 전(1992년 5월) 한국CBMC(기독실업인회) 서울영동지회 전도 초청 모임에 갔다가 그 단체의 지도 목사로 계시던 김 동호 목사로 부터 들은 말씀이 생각나서 급기야 글을 쓰게 되었다.
다름 아니라 김 목사께서 창세기 1장 27-28 절을 본문으로 말씀(제목 : '고지를 점령하라') 을 전하던 중에 느닷없이 '공부해서 남 주자', '돈 벌어서 남 주자', '출세해서 남 주자' 라는 메세지를 참석자들을 향해 큰 목소리로 외치는 게 아닌가! 나는 평소 들어보지 못한 말이라 잠시 어리둥절 했지만, 그 후 인생을 살아가면서 그 말씀이 계속 반복 적으로 되새겨지며 아직도 가슴에 깊이 박힌 못처럼 남아 있다. 어제 밤에도 몽골 얘기를 하다가 아내가 '아껴서 남 주자' 라는 말을 하기에 옛일이 생각났고, 그래서 김 목사께서 하신 말씀에 덧붙여 네 가지 항목의 '남 주자학(朱子學) 개론'을 정리함으로써 내 나름대로 '인생의 고지'를 점령하는 데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신념과 소회를 밝히고자 한다.
#1. 공부해서 남 주자
어느 시대, 어느 사회를 막론하고 자녀 교육이나 학습의 진전을 위해 신경 쓰지 않는 나라가 어디 있겠는가? 성리학을 국가 이념으로 세운 이씨 조선이 과거 제도를 통해 엘리트를 양성하고 선별하여 국사를 이끌도록 조치한 학문 중시의 전통은, 그 후 500년을 넘어 현대 한국에 까지 고시 제도와 각종 자격증 시험으로 그대로 계승되고 있다. 그만큼 우리의 인생에 매우 중요하고 실질적인 기능을 부여하는 요건이 성공을 위한 '공부'다.
그런 '공부'를 태만히 하거나 무시하는 사람은 결국 사회에서 낙오하고 도태되는 경우를 많이 본다. 그런 만큼 우리는 자녀 교육을 엄중히 관리하면서 자식이 '공부벌레'가 되기를 원하는 부모들이 대부분이다. 극단적인 예로 대학 입시 공부를 위해 초등학교 때 부터 사설 학원에 보내는 등 경쟁적으로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여기에 문제가 있다. 그렇게 자란 아이들이 나중에 좋은 대학에 들어 가고, 또 사회 진출에 있어서도 남다른 성공 가도를 달린다고 치자. 그런 아이가 장차 '의미 있고 행복한 인생'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 다시 말해 우리가 추구하는 진정한 교육, 즉 인격과 실력이 겸비된 인재로서 이웃과 사회로 부터 존중 받는 리더십을 갖추는데 그것 만으로 충분할 수 있을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세속적인 성공에 따른 필요조건은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인생 전체를 두고 '삶의 의미와 행복을 추구하는 길'에는 결코 충분한 조건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렇게 성장한 인물은 '자기 의(義)'에 갇혀,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인 삶에 치우치다가 자신도 모르게 외 곬의 함정에 빠지기 쉽고, 그 여파로 마침내 편파적이고 폐쇄적인 삶을 살게 됨으로써 이웃과 사회를 매사 불평하고 비판적인 시각으로 보는 상태로 전락하기 쉽다. 나는 이런 분들을 종종 경험한다.
?그렇다면 이런 모순된 성공 방식의 함정을 뛰어넘어 진정한 의미와 행복을 찾으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내 경험으로, 가장 쉽고 확실한 방법으로, 김 동호 목사께서 외친 "공부해서 남 주자"를 실천하면 된다고 본다. 자신이 배우고 공부한 것을 이웃과 미래 세대에게 조건 없이 나눠 주면, 아무런 반대 급부 없이 무상으로 나눠 줄 수 있다면, 그 후 그는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참으로 기쁘고 감사한 마음의 경로를 통해 더 멋지고 아름다운 인생의 보람을 얻게 될 것이 분명하다. 이것을 두고 이타적 행위로 거두는 선순환 적 보상이라고 말한다.
나는 이런 인생을 살아가는 분들을 여러 곳에서 만나 보았다. 미국이나 캐나다, 유럽 등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고급 인력들이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일년의 절반이 엄동 설한으로 얼어붙는 중국 연변 땅에 가서, 아무 대가 없이 자신의 지식과 경험과 희망을 나눠 주면서 조선족 후예들을 위해 헌신해온 연변과학기술대(YUST) 교수들이 바로 그분들이다. 또한 외국인 신분으로 평양과학기술대(PUST)에 들어가서 희생적인 삶으로 자신의 모든 것을 베풀며 가르치고 있는 외국인 교수들의 순수한 박애 정신과 겸손한 미덕을 생각하면 참으로 눈물이 날 정도로 고맙고 귀한 분들이다.
어디 이 분들 뿐이겠는가?
남다른 비전을 품고 자신을 연마한 다음 그 능력과 성과를 타인을 위해 인생을 사는 분들이 적지 않다. 그 가운데 국내에서 가장 잘 알려진 분으로 한동대학교 초대 총장을 역임하셨던 고(故) 김영길 총장을 들 수 있다. 1995년 개교한 후 "Why not Change the world?" 라는 기치를 내걸고 28년 간을 한마음으로 달려온 김 총장의 좌우명이 있다.
바로 그 유명한 "배워서 남 주자"다.
그는 이 세상을 떠났지만, "배워서 남 주자"는 가르침을 따라 열심히 공부했던 한동대 학생들은 지금 세계 여러 곳에서 인격과 실력을 겸비한 인재로 활약할 뿐 아니라 배우고 공부한 것을 이웃과 약자들을 위해 나누고 베푸는 삶을 통해 선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 그들이 가장 존경하는 스승은 두말 할 것 없이 김영길 총장이다. 그런 면에서 김영길 총장은 참으로 의미 있고 행복한 삶을 살다 간 지성인 인 동시에 미래 세대의 정신적 스승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는, 신실하고 의로운 교육자였다.
그래서 나도 후학들에게 이렇게 조언하고 싶다.
첫째, 공부를 열심히 해라. 할 수 있는 모든 힘을 다 기울여 공부해라.
둘째, 배우고 익힌 지식을 아무 조건 없이 남들과 나누고 소통하는 선한 매개물로 사용해라.
셋째, 남을 이롭게 하면 언젠가 남들이 당신을 존중하고 스승으로 대접하며 끝까지 따를 것이다.
연변과기대(1992년 9월 개교)의 자매학교로 한동대학이 1995년 5월에 개교했을 때, 그동안 대학 설립을 위해 동분서주하며 숱한 고생을 겪었던 김영길 총장을 위로하고 축하하기 위해 찾아간 자리에서 그는 담담한 어조로 "배워서 남 주자"는 신념을 갖고 학생들을 가르치겠다고 다짐하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리고 똑같은 의미로 "공부해서 남 주자" 라고 외치던 김 동호 목사의 목소리가 오늘 따라 더욱 귀에 쟁쟁 하다. 참으로 귀하고 존경해 마지 않는 분들이다.
#2. 돈 벌어서 남 주자
세상에 돈 싫다는 사람이 있을까?
돈을 적게 벌고 이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드물 것이다. 역사를 뒤돌아 볼 때, 욕심을 내어 재화를 탐하기 보다 가난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며 편안한 마음으로 도를 즐긴다는 '안빈낙도'의 삶이 존중 받던 시대가 있었다. 특히 공직자로서 청렴 결백하고 검소하게 사는 것을 즐기며 '청빈 낙도'의 삶을 누리는 것이 조선의 선비들이 추구해야 할 최고 덕목으로 평가한 시대도 있었다. 이러한 생활 윤리는 불교와 유교(성리학)의 영향을 이어 받은 지식인들이 자신의 심신을 안정 시키고, 세상의 지탄을 받지 않도록 겸허하게 살아가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일종의 정결 의식에 가까운 '자정의 윤리' 를 삶의 기준으로 삼았다고 해도 크게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 특히 한국의 개신교(프로테스탄트)교회에서는 좀 더 적극적인 방법으로 직장과 기업을 통해 돈을 벌고 그 돈을 자기 뿐만 아니라 이웃과 사회에 환원하는 과정을 통하여 세상을 더욱 아름답게 변화 시켜 가고자 애쓰신 분들이 적지 않다. 이를 두고 '청부 사상' 또는 '청부 신앙'이라 하기도 하는데, 이런 노력에 최 선봉 역을 자청하며 '깨끗한 부자' 운동을 일으킨 분이 계시니 그는 다름 아닌 김 동호 목사다. 김 목사는 "돈 벌어서 남 주자' 를 외치며, 열심히 일하고 선한 욕심을 갖고 신나게 사업을 하여 큰 돈을 벌라고 독려한다. 그러나 그 돈을 버는 과정과 방법은 성경적 이어야 할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깨끗하고 정직해야 한다고 전제한 다음, 그렇게 번 돈을 자기 혼자서 만 먹지 말고 많은 사람들, 특히 가난하고 병든 약자들을 위해 베풀고 나누는 수준까지 나아가야 진정한 '청부 신앙인'이 된다고 가르친다.
성경 요한복음 6장에 보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오병이어)로 오천 명을 먹이신, 예수님이 행하신 기적의 현장에 대해 기록한 말씀이 있다.
벳세다 광야에 모인 군중들이 저녁이 되어 모두 허기져 있을 때, 어린 한 소년이 자신이 먹으려고 갖고 왔던 도시락을 예수님 앞에 내놓자 예수님이 그 '오병이어'가 든 도시락을 들고 하늘에 축사한 다음 군중들에게 나눠 주었는데, 어른만 쳐도 오천 명이 넘는 무리들이 모두 배불리 저녁을 먹었다는 얘기다.
김 동호 목사는 이 말씀을 자주 인용하면서 내게 있는 작은 것이라도 예수님께 드리면 오천 명이 먹고도 열 두 광주리가 남는 '나눔의 기적'이 일어 난다고 설교하면서, 기독실업인들이 저마다의 재능과 기술로 최선을 다해 열심히 일하여 돈을 번 다음 그것을 예수님께 드려 오천 명을 먹이고 살리는 일에 쓰임 받도록 하라고 권면 해왔다. 다시 말해, "오천 명 분을 먹어 치우는 사람이 되지 말고, 오천 명을 먹이는 사람이 되라"는 것이 가르침의 요지다.
이러한 '깨끗한 부자'운동은 책으로도 발간되었고 그 후 오랜 기간에 걸쳐 한국기독실업인들 에게 큰 영향을 미쳤는데, 나도 그 운동의 한 동역자 로서 CBMC(기독실업인회)를 통해 이웃과 사회적 약자를 돌보는 일에 참여하는 '선한 일꾼'들을 많이 배출할 수 있도록 권면하고 격려하는 일에 힘써 왔다.
이러한 선행('아름다운 나눔')과 이웃을 향한 사회적 가치를 실현한 분들이 어디 기독교인들 뿐이겠는가? 다른 종교인들 가운데도 훌륭한 사례가 많으며, 설혹 신앙을 갖고 있지 않은 분들 가운데에서도 종교인들 보다 더욱 아름다운 행동으로, 큰 돈으로 선행을 베풀고 떠난 분들이 적지 않다.
내가 아는 분 가운데 대표적인 사례로 정문술 회장을 들고 싶다.
'김경묵 칼럼'의 대표이신 김경묵 선생이 지난 6월 중순에 타계하신 정문술 회장을 기리며, 마음 아파 하며 올린 글을 읽어 보면 가슴 뭉클해지는 대목이 한 두 군데가 아니다. 중앙정보부 출신의 늦깍이 창업으로 많은 시행착오와 고통이 있었지만 이를 슬기롭게 잘 이겨냈을 뿐 아니라, 회사명 그대로 '미래 산업'을 위한 새로운 기술과 트랜드에 천착 하면서 누구보다 열심히, 정직하게 노력한 끝에 그는 남들보다 앞선 분야('라이코스' 인터넷기업 국내 도입, 반도체 검사장비 '핸들러로' 시장 개척 등)에서 크게 성공했다. 김경묵 대표는 당시 정문술 회장을 인터뷰 했을 때 그가 이렇게 말했다고 전한다.
"정직한 경영으로 돈을 번 우리나라 최초의 기업을 만들고 싶다"라는 포부를 밝혔다고 한다. 그는 이후 공장에 있는 직원들과 대화하면서 세습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했고 그 후 소유와 경영을 철저히 분리하는 경영관리를 통해 전 직원의 사기와 긍지를 높였으며, 또한 디지털경제에 맞는 기부 문화를 정착 시키겠다고 공언하면서 그에 걸 맞는 기부를 통 크게 했다. 카이스트(KAIST)에 거액을 기부한 것도 그의 이러한 "돈 벌어서 남 주자"는 기부 의식이 실천적으로 드러난 사례다.
나아가 그는 은퇴 후에도 재능 있는 인재들을 키우고 돕는 일에 아낌없이 헌신했는데, 대표적으로 현 카이스트 이광형 총장이 그 대상 인물 가운데 뛰어난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정문술 회장을 직접 알지는 못했지만, 필자가 2021년 3월 평양과기 대(PUST) 3대 총장으로 선임된 후 제일 먼저 만나 자문을 구한 분이 이광형 총장이었는데. 그때 이 총장은 정문술 회장께서 카이스트와 자신에게 베푼 선행을 자랑하면서 극한 존경의 뜻을 표하는 걸 보고 내심으로 얼마나 부럽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는지 모른다.
이외에도 크고 작은 선행을 통해 세상인심을 훈훈하게 만들고, "세상은 살아볼 만한 곳이야" 라는 식으로 상대방의 기운을 북돋아주는 사례가 적지 않다. 신문과 뉴스에서는 늘 사건 사고나 사회의 부정적인 면을 드러내는데 힘을 쏟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줄 때가 많다. 그러나 나는 단언 컨데, 눈에 보이지 않고 귀에 잘 들리지 않지만 이 세상에는 악한 사람들 보다 착한 사람들의 수가 더 많으며, 자기도 힘들지만 자신이 벌어서 갖고 있는 작은 돈을 쪼개어 자기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해 나누고 베풀고 돌보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는 그분들께 감사의 기도를 한다.
마침 오늘(11/8) 아침 '조선일보' A25면에 아름다운 미담 두 개가 실려 반갑게 읽었다. 하나는, 울산 남구 신정동에서 열린 소프트웨어 교육 시설인 '종하이노베이션센터' 준공식 기사다. 3대를 이어 330억원 통 큰 기부를 한 가족 얘기다.
이주용(89)KCC정보통신 회장은 47년 전 부친 고(故) 이종하 선생이 기부해 지은 실내 체육관 '종하체육관'이 낡자 아들(이상현 부회장)과 함께 체육관을 허물고 이노베이션센터를 지은 것이다. 이날 준공식에 참석한 김두겸 울산 시장은 '당신은 울산의 자랑스러운 시민'이라고 새긴 감사패를 전달하며 청년 창업의 '꿈 터'가 생겼다고 치하 했다. 이 회장은 2017년 KCC정보통신 창립 50주년을 맞아 "내가 가진 예금, 주식 등 1200억 원 중 절반을 사회에 기부하겠다"라고 했는데 이번에 이노베이션센터를 준공하면서 7년 만에 약속을 지킨 것이다.
또 하나는, 서울 동대문구 경동 시장에서 3평 남짓한 도라지 가게를 운영하는 이승숙(64)씨의 미담이다. 그는 43년 째 도라지를 팔아서 한 푼 두 푼 모은 5000 만원을 지난달 4일 "형편이 어려워 공부 못하는 학생이 없게 해 달라' 며 동국대에 기부했다. 독실한 불교 신자인 이 씨는 남편을 일찍 여읜 후 시동생 삼 형제를 돌보며 경동 시장에 터를 잡고 도라지, 더덕을 까며 매일 200-250원 씩 악착 같이 모았다고 한다. 그 악착 같이 벌어서 모은 돈을 "나도 형편이 어렵지만, 나 보다 더 힘든 사람들을 도울수록 내 마음이 풍요로워 진다"고 하면서 아낌없이 쾌척 했다. 참으로 아름다운 얘기다. 이래서 세상은 살만한 곳이고 또 살 맛 나는 세상을 만들어 후대로 이어 주어야 할 사회적 책임이 우리들에게 있음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한다. 그렇다, 우리 모두 "돈 벌어서 남 주는 일"에 죽기 살기로 한번 도전해 보자.
남 주자학(學) 개론 (下)
이승율
동북아공동체문화재단 이사장
#3. 출세 해서 남 주자
세상에는 우리가 존경할 만한 많은 위인들과 훌륭한 리더들이 있다. 그들의 성장과 행적 및 실적을 다 알 수는 없지만 그들이 출세한 배경과 내력을 살펴보면 유의미한 특징을 발견하게 된다. 이를 파악하는 방법으로 직업과 사회적 역할 범위를 구분하여 정리해 본다.
첫째, 어려운 성장 과정을 거쳤지만 이를 극복하고 출세한 이후에 이웃과 사회, 나아가 국가와 세계를 위해 자신의 재량과 능력을 크게 발휘한 지도자형 리더들이 있다. 이런 분들은 대개 정치 분야에서 탁월한 역할을 많이 했다. 에이브라함 링컨 대통령이 가장 위대한 사례가 될 수 있겠다.
또한 흑인으로서 최초의 미국 대통령이 된 오마바 대통령도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한국 정치사 에서도 청년 시절의 고난을 딛고 애국심과 국가 비전을 가슴에 품고 불굴의 의지로 나라와 국민을 위해 전 생애를 바친 이승만, 박정희, 김대중 대통령 등의 리더십을 돌아 보면, 그들이 저마다 당면한 시대적 정의를 위해 얼마나 큰 역할과 영향력을 미쳤는지 알 수 있다. 이외에도 국회의원이나 선출직으로 출세한 지자체 단체장들이 정치적 리더로 성공한 분들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데, 이들이 선공후사(先公後私)의 리더십으로 각자가 맡은 임무와 사명에 충실할 때 국리민복(國利民?)의 터전이 확장되고 지역과 사회가 더 큰 미래를 보장하며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자라는 과정에 일탈하지 않고 국가 또는 사회가 정해 놓은 기존 교육 시스템대로 공부하고 성공한 다음, 후일 자신의 경험과 비전을 부하들과 타인들에게 전수하는 방법으로 사회적 리더 역할을 하는 분들이 제법 많다. 법조계 인사, 교수, 학자, 연구원, 고위급 공무원 같은 분들이 여기에 속한다. 국 내외 적으로 이 분야 리더들은 다른 분야보다 이름은 덜 났지만 영향력 면에서는 매우 지적이고 실질적인 대안을 조언하는 오피니언 리더들이다. 하도 조심스럽게 처신하는 바람에 옆에 있는 사람들 조차 그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를 때가 많을 정도다.
그러나 실질적인 면에서 그들은 사회 각 분야에서 조용하지만 매우 유니크 한 영향력을 발휘하며 사회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 이런 분들의 전문성과 솔선 수범 하는 영향력은 마치 잘 조합된 모듈처럼 조직의 생산성을 강화하고 체계화하는데 큰 역할을 담당하게 된다. 2 년 전에 한인으로서는 처음으로 '수학계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필즈상(Fields Medal)을 수상한 미국 프린스턴대 허준이 교수도 이 범주에 속할 수 있겠다.
그는 지금 유명 인사가 되어 있지만, 국내에서 고교를 중퇴하고 검정고시를 통해 서울대 물리학 부에 진학한 후 미국으로 유학을 간 특이한 경력을 갖고 있는 인물이다. 내성적인 성격으로 평소에 말없이 자기 일에만 몰두한 타입이지만, 필즈상을 수상한 지금은 국내 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지역의 꿈나무들을 향해 엄청난 영향력으로 등대 역할을 하고 있다.
셋째, 학교 성적에 매달리기 보다 자기가 좋아하고 잘하는 강점에 집중하고 이를 잘 훈련해서 출세한 분들이 많다. 이런 분들은 문화 예술, 스포츠, 게임 등 특기 분야에서 남다른 독창적 실력과 업적을 쌓으며 큰 인기를 얻고, 가는데 마다 많은 플러어들을 거느리며 큰 영향력을 미치는 분들이다. 영화인, 가수, 스포츠 맨(야구, 축구, 농구 등)은 말할 나위 없고, 소설가, 화가, 성악가들 가운데도 많은 분들이 출세했다.
한국 출신의 젊은이들만 따져도 최근 세계적으로 각광을 받는 인물들이 많이 배출됐다. 최고의 축구 스타로 손꼽히는 손흥민(32). 세계가 주목하는 피아니스트 임윤찬(20), 조성진(30),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 성악가 조수미(62),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 한국 화단을 대표하는 서울대 김병종 교수(47), 봉준호 감독에 이어 올해 미국 아카데미상(오스카 상) 작품상과 각본상 후보에 오른 한국계 캐나다인 셀린 송(36) 등 K-컬쳐와 한류의 흐름을 타고 세계 여러 지역에서 한국의 위상을 드높이는 인물들이 산재해 있다. 거기에 더하여 올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54)까지 합치면 정말 대단한 영향력을 가진, 한국을 빛낸 위대한 인물군이다.
넷째, 한국을 대표하며 세계적으로 이름난 기업인들을 꼽아 보라면, 재벌급 인사들 뿐만 아니라 벤처 및 스타트 업에서도 크게 성공 가도를 달리는 젊은이들이 많다. 삼성,현대,SK,LG 등 재벌 총수들이 한마디 인터뷰하면 주가가 급등하고 경제 판도가 달라질 정도로 영향력을 미치지만, 어떤 면에서는 젊은 다크호스 기업인들이 미래 세대의 흐름을 이끌어 가는 조타수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 포보스 지(誌)가 선정한 '2020년 아시아 30세 이하 300인 리더'에 선정된 한국인 25명 중 스타트 업 CEO 21인이 포함되어 있어서 국내 여론을 뜨겁게 달군 적이 있다. 그리고 작년 6월에 한국에 온, 생성형 인공지능(AI) 챗 GPT개발사인 '오픈 AI'의 올트먼 최고 경영자(CEO)가 한국 스타트 업의 기술 수준과 기업 경영능력을 높이 평가하여 러브 콜을 보낸 사실은 앞으로 국내 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서도 한국의 젊은 기술집약형 리더들이 얼마나 큰 영향력을 미칠지 상상이 안될 정도다. 참으로 놀라운 한국의 미래 지향적 위상이다.
다섯째, 이 시대의 트랜드 가운데 미디어 분야가 점 하는 역할과 영향력은 지대하다. 그저께 끝난 미국 47대 대통령 선거만 봐도 여론 조사와 심층 분석을 이끈 미디어의 영향이 얼마나 컸는가! 따라서 방송 및 언론 분야에 종사하는 리더들이 갖는 대중적 인기와 관심도는 연예인 이상이다.
그만큼 사회 각 계층에 큰 영향력을 끼치며 여론을 형성하고 그 흐름을 이끌어가는 향도적 역할을 하는 인물들이 적지 않다. 내가 개인적으로 좋아하고 존중하는 방송인과 논설위원, 기자들이 있지만 그들의 이름을 거명 하는 것은 큰 실례가 될 것 같다.
다만 한 가지, 그들에게 바라는 것은 그들이 정치적 여론을 이끌고 형성하더라도 결코 진영 논리에 빠져 편견에 치우치는 일이 없도록, 명실공히 건전사회를 계도 하는 중도적인 태도와 잣대로 일하기를 당부하는 것이다. 국가를 흥 하게도 하고 좌절 시키기도 하는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 권력'이 그들의 입과 손끝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이상 다섯 분야의 직업과 사회적 역할 범위에서 '출세한 인물들의 영향력' 을 살펴 보았다. 이 분들이 사회적으로 출세하고 영향력을 끼치는 만큼 나는 이 분들께 마지막으로 한 가지 결론적으로 부탁하고 싶은 게 있다.
직언 해서 말하자면 "출세해서 남 주는 일"에 신경을 써 달라는 부탁이다. 실제로 그런 일을 구상하고 실천해서 이 어둡고 각박한 사회에 등대와 같은 역할을 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각자의 분야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일해서 출세하도록 노력하는 것은 기본이며, 그렇게 출세해서 지명도가 높아지면, 그때 조금만 더 자신을 낮추고, 가슴을 열고, 겸손한 태도로 이웃과 사회를 따뜻이 보듬어 주는 섬김 형 리더들이 되어 달라는 부탁이다. 그렇게 만 된다면 이 세상은 한층 더 살 맛나는 세상으로 바뀌고, 대한민국에서 사는 게 천국 다음으로 행복한 삶이 되지 않겠는가!
#4. 아껴서 남 주자
김 동호 목사께서 우리들 기독실업인들에게 요청한 삶의 윤리는 기본적으로 "공부해서 남 주자", "돈 벌어서 남 주자", "출세해서 남 주자"이다. 이 세가지 덕목에 "아껴서 남 주자"라는 항목을 덧 입혀 '남 주자 학(學)'의 4상(象) 개론을 마무리 하고자 한다.
우리가 무엇을 아낀다고 할 때, 무엇을 아끼면 좋을까? 시간을 아끼고, 돈을 아끼고, 옷이나 물건을 아껴서 사용하고 , 음식물을 아껴서 먹는 일이 실생활에 매우 유익하다. 이것을 나쁘다 할 사람은 없다. 다만 이것을 제대로 실천하기가 어려울 따름이다. 이 가운데 내가 가장 지키기 어렵다고 여기는 것은 시간을 아끼는 일이다.
옷이나 물건은 나이가 들면서 거의 예전 것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으니 아끼고 말고가 없다. 음식물도 적당한 양으로 먹고, 또 음식물을 남겨서 재탕으로 다시 먹는 일이 없도록 조심한다. 여기에 더하여 시간을 정해 놓고 습관적으로 운동하는 것이 노년에 건강을 지키는 기본적인 비결이다.
실은 돈도 절약해서 아끼며 쓴다. 아끼려고 마음 먹으면 얼마든지 아끼며 살 수 있다. 솔직히 고백하면, 나도 자신의 호의호식을 위해 쓰는 돈은 거의 없다. 아내도 이런 검소한 생활에 익숙해 있고 오히려 나보다 더 여물게 돈 관리를 한다. 이는 나이가 들면서 자연스럽게 익혀진 '습관적 절약'이다. 그런데 정말 맘대로 잘 안되는 것이, 내 경우에는 시간 관리다.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손님도 많거니와 이런 저런 일들로 여전히 바쁜 일정이다. 바쁘다는 핑계로 때를 잘 분별하지 못하고 시류에 흔들리고 있는 자신을 생각하니 마음이 무척 답답해 진다. 이럴수록 마음을 다잡아서 '맡겨진 일'을 잘 수행해야 할텐데 묘안이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서 성경을 펴 놓고 이곳 저곳 살펴보다가 '세월을 아끼라'는 대목을 찾아 읽었다. 에베소 서 5장 15ㅡ16절 말씀이다.
"(15)그런 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있는 자 같이 하여 (16)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이 말씀을 묵상 하고 있는데 갑자기 섬광처럼 '지혜의 빛'이 번쩍한다. 이건 내가 억지로 생각을 짜내서 된 게 아니라 오직 은혜로 주어진 생각이다.
"세월을 아끼는 자가 지혜로운 자요, 지혜로운 자는 세상에서 벌어지는 악한 일을 결국 이기게 된다"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악한 일을 이기는 방법으로, 열심히 공부해서 남 주는 일이 곧 세월을 아끼는 일이며, 정직하게 돈 벌어서 남 주는 일이 곧 세상을 이기는 일이며, 또한 최선을 다해 노력한 끝에 출세한 다음 그 권위와 능력을 남을 위해 사용하는 것이 악한 시대를 극복하는 창의적인 대안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시간을 아끼고 세월을 아끼는 일이 따로 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 공부해서 남 주는 일과 돈 벌어서 남 주는 일, 그리고 출세해서 남 주는 일에 까지 공히 적용되고 공통 분모로 역사(役事) 한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게 되었다. 이것을 한마디로 묶어 보면 "지혜로운 인생 즉 의미 있고 행복한 삶을 살아가는 지혜로운 자의 의(義)"라고 정의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인생의 고지'를 점령하는 탁월한 결단과 용기와 행동이다.
글의 제목을 '남 주자학(學) 개론'이라고 써 놓고 보니, 혹자는 이 글을 마치 중국 남송(南宋)의 성리학자 주희(朱熹)를 연구한 글이 아닐까 오인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남 주자"는 어휘에 배울 학자를 붙였으니, 이는 '남 주는 일'에 대한 개념을 정리한 것에 불과하다.
이제는 글을 마쳐야 할 시간이다. 지금 내가 가장 쉽게 시간을 아끼는 방법은 여기서 글을 마치는 일이다. 그러나 끝으로 한 가지 소식만 더 전하고 싶다.
내가 존경해 마지 않는 김동호 목사님(73)에 대한 최근 뉴스다.
그가 날마다 아카이브의 유튜브(최근 조회수 약 33만명)로 팔로우들에게 말씀을 전하는 '날기새(날마다 기막힌 새벽)'를 통해 들은 소식이다. 5년 전(2019)에 폐암 수술을 받았던 김 목사는 그 후 해마다 늦가을 부터 겨울 동안 캄보디아에 체류하면서 건강 관리를 해 왔는데, 그런 중에 NGO재단을 설립하여 세계 각지로 부터 기탁한 성금을 갖고 쓰레기로 가득 찬 마을 한복판에 학교를 세웠다.
그런 후 불우한 어린아이들을 무상으로 가르치는 교육 사업을 꾸준히 지원해 왔다. 많은 뜻있는 기독인들의 헌금과 자원봉사자(교사)들의 헌신으로 지금은 100여 명이 공부하는 근사한 정규 학교가 되었다. 얼마 전에 전해 들은 기쁜 소식은, 거기서 배출된 학생들 가운데 두 명이 프놈펜에 있는 유수 기업에 취업하여 은행원이 받는 봉급 만큼이나 큰 돈을 벌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 스스로 매월 일정액을 정하여 학교를 위해 헌금을 보내주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 소식을 들으면서, 그가 20여 년 전에 우리들 앞에서 외쳤던 "공부해서 남 주자", "돈 벌어서 남 주자", "출세해서 남 주자" 라는 말씀이 캄보디아 아이들을 통해서 그대로 실현되고 있다는 감동을 느꼈다. 이와 동시에 내가 더욱 기쁘고 감격 스럽게 여긴 것은, 이런 사역을 지원하고 이끌어 가고 있는 김 동호 목사 자신이 '남 주자학(學)'의 산 증인이요 영적 실체가 되어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더구나 그는 암 환자가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세월을 아끼며, 악한 시대의 사선을 넘어 낮은 곳으로 가서 '찬란한 지혜의 빛'을 발하며 캄보디아의 새로운 미래를 위해 헌신하고 있으니, 짧은 인생을 영원한 시간에 잇대어 자신의 인생을 참으로 아름답게, 의롭게 살아가는 지혜로운 자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을 마무리 하면서, 그가 그립고 보고 싶어서 눈물이 날 지경이다.
김 동호 목사님,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내내 건강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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